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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자기기만의 진화
이 책은 이 주제에 대해 진화적으로 접근한다. 이득을 생존과 번식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로 측정한다면, 자기기만을 하는 자에게는 어떤 생물학적 이득이 있을까? 자기기만은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어떤 도움을 줄까?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자기기만은 우리의 유전자가 생존하고 번식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줄까? 달리 말하자면, 자연선택은 어째서 자기기만의 메커니즘을 선호하는 것일까? (22쪽)

아동 학대의 가짜 기억
하지만 이미 수십 군데의 공동체가 자신의 아이들이 성적으로 학대당했고, 로봇과 바닷가재의 공격을 받았고, 개구리를 산 채로 먹도록 강요당했다고 배운 탓에 생긴 괴로운 트라우마에 시달려야 했다. 가공의 학대 때문에 투옥된 이들도 있었고, 일부 무고한 부모는 자기 아이들에게 소아성애를 저질렀다고 믿는 사람들로부터 공개적인 비난을 받는 치욕을 감수해야 했다. 유감스럽게도 법정에 나와서 그 여성들과 아이들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전문가로서 견해를 밝히는 증언을 함으로써 바보 놀이에 기꺼이 참가했던 임상심리학자도 무수히 많았다. (118~119쪽)

구혼할 때의 기만과 자기기만
1960년대 초에 젊었을 때, 나는 ‘거짓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여성을 만나면 강하게 끌렸고 내 모든 것을 다 보여주었다. 나는 사랑에 빠졌다고 느꼈고, 두세 차례 섹스를 했다. 그러고 나면 끌렸던 감정이 통째로 사라졌다. 아니, 사실상 피하려는 마음으로 돌아섰다. 낭만적인 사랑이라는 거짓 감정은 섹스를 유도하기 쉽도록 나타난 것이었으며 섹스가 끝난 뒤에는 사라진 것이 분명했다. 물론 나는 일을 치른 뒤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여성들은 더 상심했다. (168쪽)

편향된 기억
사람들은 선거 때 투표를 하지 않았음에도 했다고 기억하고, 기부를 하지 않았음에도 했다고 기억한다. 또 투표를 했다면 실제로 투표를 한 후보자보다는 이긴 후보자를 찍었다고 기억한다. 또 아이들이 실제보다 더 조숙하고 더 재능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이런 사례는 많다. 사람들은 종종 기억이 시간이 흐르면서 선명함이 점점 흐려지는 사진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 기억은 재구성되고 쉽게 조작된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기억을 끊임없이 재창조하며, 다른 사람이 이 과정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비교적 쉽다. (232쪽)

거짓말 탐지 검사
진정으로 신뢰할 만한 결과를 내놓는 질문은 ‘유죄 지식 검사’뿐이다. 무해한 질문들 사이에 범인만이 알 수 있는 사실을 가리키는 질문을 하나 끼워 넣는다. 희생자는 죽기 전에 붉은 공단 이불보에 누워 있었나요? 배경 반응들에서 벗어나는 반응이 나타나면 기만의 증거가 된다. 당사자가 모르는 내용을 물었을 때의 반응보다 더 흥분하든 덜 흥분하든 간에 다른 반응이 보이기만 하면 된다. (290쪽)

미국의 거짓 역사 서사
그는 가학적인 공포로 통치했다. 신생아는 개에게 먹이로 주거나 울부짖는 엄마 앞에서 바위에 패대기쳐 죽였다. 히스파니올라에서만 2만 명이 살해당했고, 인근 섬들에서는 더 많았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겪는 공포에 반응해 흔히 대량자살과 유아 살해를 저지르고는 했다. 긴 이야기를 짧게 줄이자면, 콜럼버스와 그의 후계자들이 히스파니올라 섬을 점령한 지 겨우 25년 사이에, 약 500만으로 추정되던 원주민 인구는 5만 명 이하로 급감했다. (348쪽)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
2003년에 미국이 이라크에서 벌인 전쟁은 처음부터 기만과 자기기만에 빠져 있었다. 9/11 사건이라는 가짜 구실을 내세운 그 전쟁은 석유 및 관련된 경제적 자산의 통제권을 확보하는 동시에 주둔 기지를 건
설하고 맹방인 이스라엘을 지원하기 위해 고안된, 의도적인 선택에 따른 전쟁이자 공격전이었다. 물론 뻔한 거짓 핑계를 내세웠다. 훗날 이전쟁은 기만과 자기기만을 수반한 어마어마한 군사적 실책의 교과서적
인 사례라고 학교에서 가르치게 될 것이 확실하다. (406쪽)

접어보기
출판사 리뷰
우리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이유

우리의 감각기관은 우리에게 바깥세계를 경이로우리만치 자세하고 정확하게 보여주도록 진화해왔다. 총 천연색의 3차원으로 사물을 지각할 수 있고 그 움직임과 질감, 질서, 내재된 패턴, 그리고 소리와 냄새까지 파악할 수 있다. 현실을 거의 실재하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그런데 그 자세한 정보가 뇌에 전달되었을 때, 우리의 의식은 종종 그 정보를 왜곡하고 편향시킨다는 것이 문제다. 스스로를 속이는 자기기만을 행하는 것이다. 거짓기억을 만들어내고 부도덕한 행위를 스스로 합리화한다.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기도 한다. 왜일까?

로버트 트리버스 박사는 이런 편향이 분명 우리의 생물학적인 복지, 즉 생존과 번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한데도 “우리는 왜 스스로를 속이도록 진화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그 역사가 길다. 1976년 리처드 도킨스의 출세작 『이기적 유전자』가 출간되었을 때 트리버스 박사가 초판의 권두사를 맡았다(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30주년 기념판에서 트리버스 박사의 초판 권두사를 복원시켜 실었고 그의 아이디어들이 9장과 10장, 12장의 대부분, 8장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며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그 글에서 트리버스 박사는 속임수가 동물의 의사소통의 기본요소라는 도킨스의 아이디어를 연장시켜 이 속임수를 간파하는 능력은 자연선택의 과정에서 강력한 장점으로 작용했을 것이고(함께 진화했을 것이고) 이로 인해 자기기만이 선택되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처음 소개했다.
그는 그 해답의 단초를 1976년 부모-자식 갈등 문제를 연구할 때 발견했다고 한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기만과 자기기만을 이용해 자식의 정체성을 형성하려 한다는 것이다. “내가 다 너 잘되라고 이러는 거야”라는 말로 표현되는 부모의 자식에 대한 통제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트리버스 박사는 이 아이디어를 확장해 자기기만을 연구했고, 그 결과를 이 책 『우리는 왜 자신을 속이도록 진화했을까?』에서 소개하고 있다인간 역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기만술을 발휘하는데, 이때 인지 부하를 느껴 신체적으로 여러 가지 반응을 하게 된다.
과대하게 ‘자신감’을 갖는 것도 자기기만의 예가 될 수 있다. 마치 동물들이 위급한 상황에서 몸을 부풀려 자신의 원래 크기보다 커 보이도록 하는 것처럼 사람도 스스로를 ‘과신’함으로써 상대방에게 확신을 심어줄 수 있다. (물론 어느 정도까지 제어되지 않으면 치명적이고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학자들의 94%는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상위 절반에 속한다고 확신한다. 또 미국 고등학생의 80% 이상이 자신이 리더십 면에서 상위 절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진짜로 그렇게 믿는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더 도덕적이고 더 매력적이며 남에게 더 이익 편향적인 사람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긍정적인 행동의 기억보다 부정적인 행동의 기억을 10년 전도 넘는 과거 속으로 밀어 넣는다. 예전에는 좀 행실이 나빴지만 최근에는 훨씬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똑같음에도! 이런 거짓 서사는 자신의 진정한 동기를 남에게 숨기기 위해 현행의 동기를 편향된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남과 자신을 기만함으로써 누리는 혜택은 일시적이고 작은 반면 그 대가는 때로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도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비용은 대부분 내가 아닌 타인들이 지게 된다는 것이 문제다. 이 책에 소개된 항공기 사고의 사례를 보면 그 끔찍함을 절감할 수 있다. 1982년 1월 13일에 있었던 에어플로리다 항공 90편의 조종사와 부조종사의 이륙 전 대화내용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사고의 위험을 감지한 부조종사가 조종사에게 우물쭈물 저항하지만 조종사의 현실회피적인 발언들에 막혀 스스로를 기만한다. 계기판의 속도가 잘못 되었다고 처음에 지적했다가 조종사가 현실을 회피하자 “음, 정상일 수도 있겠네요”라고 합리화한다. 이륙 전에도 부조종사는 날개에 쌓인 눈과 질척거리는 활주로에 대해 위험을 지적하지만 조종사의 대수롭지 않다는 현실회피(설마 무슨 일이 있겠어?)에 부딪치자 무기력해졌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자기기만의 대가는 엄청나게도 승객 74명의 목숨이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수많은 조직에서 벌어진다. 위험한 기업전략의 위험성을 인지했음에도 CEO의 강력한 주장 앞에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막연하게 일이 추진되다 위기에 처하는 경우도 비슷한 경우다.

이처럼 자기기만은 초기에는 일련의 작은 편익들을 주지만 종국에는 커다란 대가를 치르게 한다. 자기기만의 혜택은 즉시 볼 수 있지만 그러한 무지의 비용은 나중에 치르는 것, 그게 삶의 일반법칙이라고 트리버스 박사는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과신과 무의식을 피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쉽지는 않지만 자기기만에 빠질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개인차원에서건 조직차원에서건 그 비용은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기만과 자기기만의 문제는 도처에 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에서도 나타나고, 특히 남녀 간에 자주 발생한다(트리버스 박사는 자신이 잠자리를 갖기 전에 여자에게 얼마나 홀딱 빠져 있었다고 느꼈는지, 그리고 일을 마치고 얼마나 그 관심이 싸늘하게 식었는지의 사례로 이를 설명한다). 자기기만과 면역체계와의 관계도 흥미를 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는 사람일수록 에이즈에 감염되기 쉬웠다!) 조직차원에서의 자기기만(항공사고와 나사에서의 사고도 놀랍다)도 주목을 끈다. 이 책의 8장 이후부터는 자기기만의 이론을 실제사례들에 적용한 내용이다. 자기기만이 어떻게 수많은 인위적인 재앙과 참사, 사고를 일으키는지 생생한 사례들이 소개되어 있다. 흥미롭게도 대한항공이나 일본의 위안부 문제 등 우리나라의 사례도 나와 있다.

저자는 자기기만에 대한 연구가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라고 말한다. 파면 팔수록 엄청난 것이 쏟아질 연구의 광맥이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연구들을 기대하는 한편, 이 책에 실린 내용만으로도 우리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도처에서 진행되는 자기기만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그로 인해 자신을 돌아볼 통찰력을 얻게 된다. 책 도처에 공개되어 있는 로버트 트리버스 박사 자신의 기만과 자기기만 사례들, 저자의 여성편력과 관련된 유머러스한 에피소드는 이 책을 읽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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