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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부처님의 말과 마음을 종의 근본으로 삼는 선종은, 초대 조사 이후 점차 그 본의가 퇴색하여 교리를 탐구하여 견해를 바로 세우는 노력을 게을리했다. 선승들의 한순간의 깨달음에만 주목할 뿐 그에 이르려면 어떤 이치로 어떤 방법을 통해 얼마만큼의 수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은 점차 없어졌다. 그것은 오늘에도 마찬가지이다. 얻고자 하는 마음은 크지만 제대로 된 실천은 하지 않는, 소위 말법 시대인 것이다.
사람들이 『능가경』에서 멀어진 이유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인도의 사변적이고 논리적인 철학 체계는 불교에도 깊이 스며들어 법상과 중관, 유식 등 대승 불교의 체계에는 현학적인 철학이 배여 있다. 일반인들이 볼 때는 논리적이고 교학적인 불교보다는 선정을 단순화하여 오직 좌선에 의한 성불이라는 말이 더욱 쉽게 다가오는 법이니까.
사실 『능가경』이 불자들로부터 외면당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 책의 대본인 한역본 『능가아발다라보경』의 서문을 쓴 소동파의 글만 보아도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소동파는 『능가경』이 불법을 깊고 넓게 현시했던 바로 그 힘 때문에 오히려 세상에서 멀어졌음을 탄식했다. “『능가경』은 그 뜻이 오묘하며 문자가 간결하고 고아(古雅)해 읽는 자가 혹 그 구절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하물며 남겨진 글만으로 뜻을 얻으려 하거나 뜻조차 잊고서 마음으로 알려고 하는 자이겠는가? 이 때문에 세상에 거의 잊히고 폐기되다시피 근근이 남아 있는 것이다.”
소동파는 당나라 선종의 융성 이후 그 여맥이 크게 남아 있던 11세기 북송 때의 인물이다. 당대(當代)의 뛰어난 인재들이 불문에 들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던 때에도 이러했으니 오늘날 『능가경』을 아는 이 없는 건 오히려 당연한 듯하다.
또 ‘선종의 뿌리’이자 ‘여래심지요문(如來心地要門)’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니는 『능가경』이 거의 잊히다시피 한 경전이 된 데에는 실제 그 내용의 해득에 만만찮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인 까닭도 있을 것이다. 방대한 불교 발전사는 물론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첫머리에 나오는 “오법, 삼자성, 팔식, 이무아”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길이 막혀 버릴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남회근 대사의 『능가경』 강의는 어렵게만 보이던 불법을 간명한 일상어를 써서 설명해 놓아 독자들이 『능가경』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다.

2. 『능가경』은 어떤 경전인가
3. 『능가경』은 어떤 특징이 있나

이처럼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는 『능가경』의 특징을 나누어서 살펴보자.

(1) 『능가경』은 과장이 없이 소박하다.
『능가경』에는 다른 경전들처럼 부처님에 대한 찬미의 게송이 반복되거나 부처가 신통력을 발휘하거나 다른 불보살들의 경외감이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인생에 의문이 많은 진지한 학생이 교사에게 궁금증이 풀릴 때까지 물고 늘어지며 질문하는 철학 수업처럼 보인다. 철학 교사는 궤변론자처럼 보일 정도로 사물의 현상과 작용의 정면과 반면을 끝까지 드러내어 유무(有無)나 단상(斷常)과 같은 양극단의 견해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2) 능가경은 수행자를 위한 경전이다.
『능가경』에서 일관되게 반복하는 것은 ‘실천’에 대한 강조이다. 자기 마음을 닦아 부처님이 자각 내증한 깨달음으로 이르라는 것이 그것이다. 수행의 경지에 따른 심의식의 미세한 흐름의 차이를 뚜렷이 밝혀 잘못된 이해로 빠지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도 『능가경』의 임무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능가경』은 의식, 인식, 정신의 자성, 현상, 작용을 설명하면서 아뢰야식을 끊어야 여래장식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아뢰야식이 전환되어 여래장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의식, 생각, 마음 등도 마찬가지로 끊어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전환하여 소멸시킬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한다.
끊는 것과 전환은 결과는 같을지 모르나 대단히 중요한 차이로 이 문제는 특히 수행자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현실적이고도 실천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지혜가 자연적인 이치로 오느냐(전환), 아니면 의도적인 행위로 얻느냐 하는 것과 같은 문제이기 때문이다.
『능가경』은, 깨달음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것으로 이치를 닦아 하나하나 점수해 가면 심의식을 넘어선 경지가 온다고 말한다. 수행 그 자체는 형이상학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의 철학적인 이해로부터도 넘어선 것이다. 달마대사가 이 『능가경』을 수행의 소의(所依)로 삼으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3) 학설의 미로를 벗어나면 수행은 자리를 잡는다.
불법은 석가모니 부처님 내면의 깨달음을 전하고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다른 주장도 많아, 이미 부처님 시절에도 수많은 견해가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 이 경은 특히나 이론이 분분했던 후기 대승 경전이니만큼 여러 외도들의 논점과 그에 대한 비판이 유독 많다. 그러나 경은 친절하다. 대혜대사의 집요하리만치 파고드는 질문에 대해 부처님의 말과 외도의 말이 어떻게 다른지 조목조목 짚어 준다.
예를 들어 여래장사상, 일심, 유식, 자재천주(힌두교) 등 다양한 분파의 이론과 본성과 현상의 관계, 일승과 삼승 등 여러 교리가 뒤섞이고 미세한 차이들이 있지만 우리를 대신한 대혜대사의 철저한 질문으로 잘못되고 얕은 해석을 벗어날 수 있다.

이치를 밝혀 하나하나 미혹을 걷어 내면 지혜는 밝아질 것이다. 그것을 책으로 펼친 것이 ‘능가경’이고, 미혹의 자락을 걷어 내는 방식이 ‘법상과 유식’이다.

4. 남회근 대사의 『능가경 강의』를 펴내는 의의는 어디에 있는가

유식과 법상의 주제는 마음의 설명에 있다. 깊이 들어가면 다루지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광막한 주제다. 이 때문에 마음을 다루는 데 차이를 두어 4권본, 7권본, 10권본 세 가지 판본으로 『능가경』이 한역되었다. 그러나 마음을 설명하는 데 과도한 힘을 쏟은 탓에 난삽함이 지나쳐 간결함의 묘미를 살리는 데 아쉬움이 있었다. 이것이 7권본과 10권본이 4권본에 비해 부족한 이유이자 이번에 4권본을 펴내는 이유이다.
불법에 다가서는 방법으로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먼저 깊고 넓게 가르침을 이해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체험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심전심, 불립문자 교외별전이라는 이름에만 마음을 두고 화두를 잡는 것이 수행의 전부로 인식되어 온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기에 남회근 대사는 강조한다. 참선은 단지 불법을 증득하는 초보적 방법일 뿐이며 교리에 통하지 못해 견지가 밝지 않으면 참선이 잘못된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남회근 대사는 다시금 강조한다. 문사수(聞思修)를 하되 핵심을 가려내는 안목을 갖도록 하라고.
불법은 부처님에게 지혜의 핵심을 먼저 듣고(聞), 그 핵심을 깊이 사색한 후에(思), 실천과 노력으로 지혜에 다가가는 것(修). 그 핵심을 가려내는 안목이 오늘 남회근 대사의 『능가경』 강의에 들어 있다. 남회근 해설의 『능가경 강의』는 대단히 분석적이고 사변적인 내용의 『능가경』을 최대한 알기 쉽게 풀이해 학술성과 대중성이 일체가 되도록 하였다.

5. 『능가경 강의』의 특징은 무엇인가

남회근 대사가 해설한 『능가경』 강의의 특징과 장점을 몇 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세 가지 판본(4권본, 7권본, 10권본)의 『능가경』은 모두 저마다의 장단점이 있는데, 이 『능가경 강의』는 4권본을 대본으로 하되 7권본, 10권본을 모두 참조하고 그 장점을 취해 원본의 내용이 잘 통하도록 하였다.
둘째, 4권본 『능가경』은 간결함과 아름다운 문장이 특징이다. 남회근 대사의 이번 강의는 원문의 어투와 경전의 성격을 감안하여 설명이 간결하고 핵심만 짚는다. 또 번역문과 그에 대한 사견을 분리해 놓았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뜻이다’ ‘덧붙임’으로 표시한 개인적 의견을 통해 어려운 원문에 가능한 한 현대인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해설을 보태 이해를 더했다.
셋째, 이 『능가경』은 부처님의 큰 뜻을 파악하기 위해 구어체를 사용해 강의한 것으로, 한 구절 한 구절 자구(字句)를 해석해 나간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이미 웬만큼 불법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남회근 대사의 해설이 마치 남대사를 직접 대면하고 체험을 듣는 것과 같은 이점을 줄 것이고 입문자들에게는 『능가경』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아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넷째, 원주와 역주 그리고 불교사전에서 정리한 용어풀이를 통해 불교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이라도 조금의 인내와 노력을 더한다면 다른 참고서적 없이도 쭉 읽으며 전체를 꿰뚫는 상쾌함을 느낄 것이다.
이 책은 남회근 저작 중 비교적 초기의 것(1965년)으로 사십 대였던 저자가 번역 와중에 느꼈던 고뇌와 번역 과정의 어려움, 그 분위기가 강의 중에 군데군데 깊이 배어 있다. 저자는 『능가경』을 해석하면서 풀리지 않는 곳이 나오면 분주하고 시끄러운 시장 통에서도 선정에 들었다 한다.

“추위와 더위 및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다음 해인 1961년 6월 12일 초고를 완성했다. 이 칠팔 개월의 저술 과정 중 깊이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곳이 생기면 편안히 앉아 참선을 하며 그 실제적 이치를 증득해 융회 관통하고자 했다. 당시 필자는 식료품 시장 안에 살고 있어서 환경이 좋지 못했다. 떠들썩한 데다 비린내 누린내 나는 쓰레기들이 가득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불사(佛事)를 행하고 그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그런 광경도 십여 년 접하다 보니 이미 습관이 되어 자연스레 느껴졌으며 깨끗하고 더러운 것을 가리는 마음도 점차 사라졌다.” (30-31쪽 서문2 자서 중에서)

이것이 남회근 해설의 『능가경 강의』의 장점을 알려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치를 풀고 드러내어 줄 뿐이다. 그동안 『금강경 강의』나 『불교수행법 강의』에서 보여 주었던 세세한 설명이 없는 것이다. 『능가경』은 알려져 있다시피 난해한 경전이다. 그러기에 『능가경』에 대한 해설은 설명 위에 설명을 더하는 방식이 되기 쉽고 난삽함을 더하기 쉽다.

유불도를 폭넓게 섭렵하여 학문적 성과와 수행 체험을 겸비한 현대의 보기 드문 인물이지만, 이 책을 번역하느라 뜬눈으로 날을 새우고 거울을 보니 귀밑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어 그 백발을 ‘능가두발’이라 했다는 등 남겨진 일화가 우연이 아닌 것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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