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벽화, 왕조, 원근법, 자연물의 배치, 국립중앙박물관, 고전적 양식, 신전, 사당, 암벽무덤, 명문비석 , 나일강 계곡, 테베, 다이르알바리, 아부지르, 네우세레왕, 태양신전

2 years ago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발생한 미술. 구석기시대 이후부터 로마시대에 이르는 긴 시간에 걸쳐 발달하고 변화한 미술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피라미드나 이집트 벽화를 생각하면 될것이다.

고대 이집트 미술은 BC 3100년경 제1왕조가 성립된 시대부터 점차 원시적 단계를 벗어나 제4∼5왕조시대에는 이미 고전적 양식을 보여줄 정도로 발달하였다. 그리하여 제12왕조, 제18∼19왕조, 제26왕조 등의 시대에는 특히 그 활동이 눈부셨다.

이집트 미술의 특징은 사후세계를 믿는 그들의 내세관과 파라오 중심의 권력구조가 예술에 반영되었다는 것.

특히 그림의 양식이나 규칙들이 규범화되어 실물을 똑같이 그리는 것보다 특징화시켜서 그리는 것이 일반화되었는데, 예컨데 원근법이 없이 사람의 크기를 인위적으로 크거나 작게 그리는 것이나 나무나 자연물의 배치나 보이는 각도등을 설정하는 등 여러방면에서 그러한 점이 반영되어 있다.주로 기원전 3000년 이후의 왕조시기에 이집트와 누비아의 나일강 계곡지역에서 제작된 기념비적 건축물과 회화, 조각, 공예품의 총칭. 이집트 미술의 발전과정은 대체로 그 나라의 정치사와 궤를 같이하지만 아울러 뿌리깊은 이집트적 사회제도의 산물이기도 했다. 공식적인 종교에 의해 지탱되는 위계적 사회구조는 권위주의적 법률에 순종할 것과 강제적 윤리를 준수할 것을 요구했으며, 이집트 미술은 그러한 권력에 봉사하는 강력한 선전도구로서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데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미술의 특성에는 지리적인 요소가 지대한 작용을 했다. 나일강은 유리한 농업조건을 제공하여 미술과 공예가 발달할 수 있는 안정된 생활환경을 마련해주었으며, 사막과 바다로 보호되어 거의 2000년간 외국이나 타민족의 침입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막의 구릉에는 예술 활동의 재료가 되는 광물과 좋은 석재가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었으나 목재가 부족하여 레바논, 소말리아, 열대 아프리카 등지로 원정을 다녀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척은 결국 이집트의 문명을 풍부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고대 이집트 미술은 이집트 문화의 종교적 신앙을 반영하여 지상의 삶은 내세의 영생에 비하면 잠시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고에서 출발했다. 신분과 계급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내세에 자신들이 지니고 갈 유용한 장식물들을 수집했으며 매장과 장례에 최대의 관심을 쏟았다. 이제까지 전해오는 미술품의 대부분은 무덤과 결부된 것들이다.

(1)선왕조시대-이집트 제1왕조가 성립하기 이전까지의 시기(기원전 2925년까지). 암벽화, 무늬토기, 점토인형, 화장용구 등 다양한 유물이 발굴되었다. 도기는 이 시기의 특유한 산물로서 세련된 기법과 대담한 장식의 발전을 보인다. 석재를 이용한 작업은 선왕조시대 후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조각은 작은 동물상이나 원래 눈화장 용구로 쓰였던 석판 팔레트의 부조장식 따위에서 출발했다. 드로잉과 회화기법은 상(上) 이집트 암벽화에 나오는 동물화라든가 배 타는 장면, 사냥장면과 아울러 더욱 세련된 히에라콤폴리스의 무덤벽화 등에 잘 나타나 있다.

(2)왕조시대-기원전 3100년경 상(上)이집트와 하(下) 이집트가 통합된 것을 계기로 이집트 문화의 다양한 흐름이 모여 단일문화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초기왕조시대(기원전 2925~2575년경)의 가장 유명한 미술품은 ‘나르메르왕의 팔레트’로서, 왕이 적들을 물리치는 장면을 그려 이집트의 통일을 상징하고 있다. 이 부조는 개별장면을 선명하게 처리하고 파라오를 신성하게 표현한 점에서 오랜 기간 이집트 미술에 나타나는 인물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머리는 옆모습으로 그렸으나 눈은 정면을 향하고 있으며 어깨가 정면을 향한 반면 상반신은 절반 정도 옆으로 기울었고 다리는 또다시 옆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여기서 사실적인 표현을 포기한 미술가의 주된 의도는 한 시점에서 볼 수 있는 것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더라고 개념적으로 알고 있는 모든 모습, 즉 인간 형상의 부분들을 가장 잘 표현해내기 위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인물을 중앙에 배치하고 있으며 인물의 크기를 달리해 상대적인 신분의 차이를 표시했다. 문화적 응집력이 높았으므로 이러한 관행들은 기원전 2000년대 말에 이른바 아마르나 양식이 등장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①고왕국시대-고왕국시대(기원전 2575~2130년경) 이래로 죽은 자가 거주하는 무덤과 신이 거하는 신전에 석재가 쓰이기 시작했다. 나일강의 진흙을 구워 만든 진흙벽돌은 선왕조시대부터 이미 일상적인 건축재료로 사용되고 있었으며 요새나 신전 경내 및 도시의 성벽, 왕의 거처나 신전 부속건물 등에도 쓰였다. 고대 이집트의 성읍은 대부분 나일강의 범람원에 위치했으므로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다소 떨어져 있는 신전이나 무덤이 주로 보존되어 있다.

이집트의 묘소 건축은 대개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대규모 피라미드를 짓고 그 안에 군주의 시신을 보관하는 방을 두고 주변에는 여러 무덤과 신전으로 이루어진 건물군을 배치했다. 사카라에 있는 제3왕조의 2대왕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는 알려진 것 중 최고(最古)의 것이다. 이것은 위로 갈수록 작아지는 6층의 계단을 포개 올린 형태이며 내부에는 사각으로 석회석을 붙인 성벽을 둘러 그 안에 왕궁과 같은 모조 건축물을 지어놓았다. 가자에 있는 유명한 대건축물들은 피라미드 건축의 고전적 형태를 보여주는데, 그 가운데 146.7m의 제4왕조 쿠푸왕의 피라미드가 가장 걸작이다. 토대를 이루는 정사각형의 면적이 5.3ha에 달하면서도 각 변의 길이는 30cm 이상의 오차가 나지 않을 정도로 정확하고 4면의 방향은 동서남북에 정확히 일치한다. 받침돌을 대어 높이 올린 대열주와 압력을 줄이기 위해 위층에 5개의 빈 방을 올린 화강암 왕실도 특징적이며 왕의 두상과 사자의 몸통으로 조각된 대형 스핑크스는 카프레의 피라미드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

귀족들의 무덤은 왕의 것과 다르게 진흙 벽돌이나 석재로 지은 꼭대기가 평평한 직사각형의 구조물로서, 아랍어로 ‘긴 의자’라는 뜻의 마스타바라 불렀다. 거대한 상부에는 많은 창고가 마련되어 사자(死者)를 위한 식량과 비품들이 저장되어있고 시신은 땅 밑의 직사각형 매장실에 안치되어 있다. 고왕국의 석조무덤과 신전은 이집트 인들의 일상생활을 생생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한 밝은 채색부조로 장식되어 있었다. 특히 뛰어난 것은 평부조 작품으로 제5왕조의 왕실무덤 건축물과 멤피스 묘역의 제5, 6왕조시대 개인무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부지르에 있는 네우세레왕의 태양신전부조와 사카라의 프타호테프 및 티이왕 무덤에 새긴 일상생활 장면들도 뛰어나다. 이 시기에 조각 인물상을 묘사하는 규범이 세워져 정확한 비례와 자세, 세부의 배치 등이 규정되었다. 군주와 관리들은 항상 지위에 걸맞은 위엄 있는 태도로 묘사되었으며 하인과 일꾼들은 자신들의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으로 보다 자유롭게 표현되었다. 이러한 규범은 양식의 지속성과 기법의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②중왕국시대-고왕국 말기에 내란과 경제 침체로 정교한 무덤건축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예술적 질이 저하되었다. 예술의 부흥이 이루어진 것은 정치가 안정된 중왕국시대(기원전 1928~1600년경)부터였다. 이 시기에는 특히 왕들의 초상조각이 주목을 끄는데 고왕국시대 인물상의 위엄있는 무표정과는 대조적으로 근심이나 비애의 감정이 잘 나타나 있다. 파이윰 오아시스 부근의 피라미드와 신전들의 규모는 더 작아졌고, 주로 말린 벽돌과 석재포장을 사용했다. 그러나 특히 부조와 회화는 뛰어난 기량을 보였는데, 이 시기의 가장 훌륭한 부조작품은 테베의 다이르알바리에 있는 멘투호테프 2세의 무덤과 카크나크에 있는 세소스트리스의 작은 사원에서 볼 수 있다. 이 작품들에서는 인물과 문구를 배치하는 데에 여백을 능숙하게 사용하여 세련미를 한층 높이고 있다.

③신왕국시대 및 말기 왕조시대-다시 한 차례의 정치적 격변기를 거친 뒤 신왕국시대(기원전 1567~1085년)로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예술의 개화기가 도래했다. 신전, 사당, 암벽무덤, 명문비석 등이 나일강 계곡을 따라 이집트와 누비아 곳곳에 건립되었다. 왕실무덤들은 도굴과 훼손을 피하기 위해 산봉우리가 우뚝 솟은 테베의 궁벽한 골짜기에 모아 세워졌다. 이른바 ‘왕들의 계곡’에는 석회석 암벽을 깊이 파서 무덤을 만들어 아무 외부 구조물 없이 다만 무덤 입구의 암벽 표면에만 표시해 놓았다. 암벽무덤은 귀족계급에서도 흔히 사용하였는데, 대부분 단순한 하나의 공간에 마스타바 무덤의 복잡한 방들의 역할을 모두 부여하였다. 그러나 일부는 상당한 공을 들이기도 하였는데, 아스완에 있는 거대한 회랑들은 종종 이리저리 얽혀 복잡한 미궁을 이루고 있으며 회랑 내부에는 가짜 문이 달린 사당을 만들었다. 때로는 정면 현관에 주랑을 설치하고 명문을 새겨 웅장하게 만들기도 했다.

신전건축은 크게 예배용 신전과 장례용 신전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일상적인 예배의 대상인 신상을 모신 곳이고 후자는 죽은 왕들의 제사를 행하는 사당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신전의 내부시설과 웅장한 크기는 제사장의 권력이 갈수록 커졌음을 보여준다. 전형적인 신전건축은 거대한 현관과 열주가 늘어서 있는 마당, 많은 기둥이 있는 회랑, 감실 및 예배당들을 포함했다. 신전 내부의 깊숙한 곳은 파라오와 대제사장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기둥과 받침대의 디자인은 종려나 파피루스 같은 식물 모양을 본떴으며 벽도 식물문으로 장식했다. 주신전 밖으로는 호수나 우물이 있어 제례에 쓰는 물을 공급했다. 부속 건물을 망라한 전체 신전은 진흙벽돌로 된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집트 미술 [Egyptian Art] (세계미술용어사전, 1999., 월간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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