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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 #피아니스트 #호기심 #베토벤 #하이든 #명곡
음악 기자가 들려주는
클래식, 그 매력적인 세계
2008년 뉴욕 필하모닉 평양 공연을 취재한 유일한 국내 음악 기자이자 2007년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타계 소식에 한달음 달려가 파바로티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사했던 음악 기자가 쓴 매력적인 클래식 입문서가 나왔다. 국내외 주요 음악 이벤트 현장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보고 느낀 이야기를 담았다.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10년 넘게 일간지 음악 기자로 일한 저자는 클래식 음악을 이해하고 감상함에 있어 사람과 현장에 시선을 맞춘다. 한 작곡가 혹은 연주자가 울고 웃으며 살아간 인생을 알면 음악이 다르게 들린다는 것이다.
극한의 긴장 속 단 한 번의 무대 위에서 모든 기량을 뽐내야 하는 잔인한 운명에 놓인 연주자들의 이야기, 유명 작곡가들의 치열하고 찬란했던 인생과 그것을 오롯이 담아낸 음악 이야기, 기사에서는 미처 전하지 못한 음악 현장의 뒷이야기, 알쏭달쏭한 클래식 궁금증과 클래식 음악의 이모저모를 마치 음악을 연주하듯 유려하게 담아냈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데는 어려운 음악이론이나 복잡한 음악사를 몰라도 괜찮다. 사람과 현장을 이해하면 클래식 음악이 더는 졸립거나 어렵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될 것이다. 예술의 풍요함을 믿는 저자가 음악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쓴 글은 단숨에 읽힐 것이다. 단조로운 일상에 신선한 변화와 풍요로운 삶을 원한다면 ‘오늘부터 클래식’이 필요하다.피아니스트로서 드바르그의 이력은 독특하다. 피아노는 다른 어떤 악기보다 이른 나이에 시작하는데, 그는 열한 살에 친구가 피아노 치는 걸 듣고 독학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열일곱 살에는 아예 포기하고 슈퍼마켓에서 일했다. 집에는 피아노도 없으며 재즈 클럽에서 아르바이트해 번 돈으로 대회에 나왔다. 피아니스트들 가운데 세계 최고에 오를 자신이 충만한 이들만 나온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드바르그는 용감하게 도전한 것이다. 당연히 오케스트라와 협연도 이번 콩쿠르에서 처음 해보았다. 이 대회의 우승자는 따로 있었지만 콩쿠르 당시 음악을 좀 듣는다는 사람들은 드바르그 얘기만 했다. 그가 연주를 끝내자 청중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The Telegraph)〉를 비롯해 각종 매체가 그와 인터뷰했다. 인터뷰 기사는 수천 번씩 공유되었다. 모스크바 음악평론가협회의 상을 받았으며, 콩쿠르가 끝나고 4년 뒤에는 소니 클래식스와 계약해 음반을 냈다. 가는 곳마다 청중을 불러 모아 매진시켰음은 물론이다. 심사위원들이 그에게 1등 상을 줄 수 없었던 만큼이나 청중은 그를 잊기 힘들어했다. p.20-22
음악은 불공정한 예술이다. 무대 위에서 단 한 번 만에, 그것도 수많은 낯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연습을 많이 한다고 해서, 어린 시절부터 기술을 연마했다고 해서 그 노력이 반드시 결과와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소리는 시간과 함께 날아가버리기 마련이고, 아무리 성실한 연주자라도 그 소리를 다시 잡아서 수정할 수는 없다. 세기의 소프라노로 자리매김한 르네 플레밍(Renee Fleming) 역시 밀라노 라스칼라극장에서 한 번 야유를 받은 후 수년 동안 무대 공포증에 굴복해야 했다. 그때의 기억이 상처로 남아 이후 무대에 오를 때마다 “죽고 싶은 생각이 들고 온몸의 세포가 소리를 지를 정도로” 고통스러워했다. 연주자들은 오늘도 시간의 부조리함과 순간의 불공정함에 치를 떨면서 무대에 오른다. p.34-35
암보가 일반화한 건 프란츠 리스트부터라고 보는 게 맞다. 음악회 역사상 가장 상업적 스타였던 그는 독주회에서 악보를 객석에 집어 던지는 ‘쇼맨십’을 보여준 후 몇 시간 동안 악보 없이 음악회를 끝냈다. 그의 음악회에 지나치게 열광한 여성 팬들이 기절했을 정도였다. 리스트의 과시욕 때문에 후배 피아니스트들이 암보라는 벽을 넘게 됐다.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 그렇다면 악보라는 커닝페이퍼만 있으면 연주자들은 100점짜리 시험을 볼 수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사실 악보는 자전거의 보조 바퀴와 비슷하다. 자전거를 배우는 단계에서 보조 바퀴는 넘어지는(악보를 잊어버리는) 걱정을 하지 않고 달리는(연주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다. 하지만 더 큰 자전거(청중 앞에서 연주)로 갈아타고 나면 보조 바퀴(악보)는 종종 ‘질주’의 즐거움을 방해한다. p.53
베토벤의 청각 장애도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그간 수많은 위인전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초인적 역경 극복’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베토벤의 청력 이상이 정말 나쁘기만 한 장애물이었을까? 청력 악화는 그가 피아니스트와 작곡가의 길에서 일찌감치 후자를 선택하는 데 결정적 ‘도움’이기도 했다. 베토벤은 신동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청력이 나빠지면서부터 무대 위에서 예전처럼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다만 작곡에 매진했다. 또한 머릿속에서 흘러 다닌 음악은 귀로 듣는 음악보다 전위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의 청각 장애는 음악의 시대 흐름을 얼마간 앞당겼다고 볼 수 있다. p.90-91
2008년 뉴욕 필하모닉의 평양 연주를 취재하러 동행했을 때 멘델스존을 들었다. 뉴욕 필 4명과 북한 연주자 4명이 함께 한 현악 8중주였다. 멘델스존 특유의 잘게 쪼개지는 음악은 북한 연주자들에게 특히 어려웠다. 8명은 몇 번 조율한 끝에 이 어렵고 복잡한 천재의 음악을 완성해냈다. 당시 나는 함께 있던 〈뉴욕타임스〉 음악 담당 기자 대니얼 J. 월킨(Daniel J. Walkin)과 눈빛을 나눴다. ‘북한에서 멘델스존을?’ 멘델스존은 유대인의 의식에 지금도 영향을 주는 철학자 모제스 멘델스존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금융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자기 노동력으로 생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는 말 그대로 부르주아인 멘델스존을 북한의 연주자들이 연주한다고? p.119-120
‘못하겠다는 생각’은 많은 예술가를 관통한다. 모차르트는 좋은 도시에서 음악 감독직을 얻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고향 잘츠부르크에선 쫓겨나다시피 했다. 언제나 시대와 불화했던 베토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는 늘 더 좋은 도시로 옮겨가고 싶어 여러 사람에게 ‘접근’하며 살다시피 했다. 브람스는 베토벤 극복이 평생 화두였지만 부족하다고 여겼다. 슈만은 피아니스트로서 부족하다고 생각해 괴상한 기계로 손가락 길이를 늘렸을 정도로 평생 콤플렉스와 살았다. 예술가들의 좌절을 이야기하면 늘 라흐마니노프가 마음에 걸린다. 그의 교향곡 1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아는 그의 음악은 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p.141
“세련된 뉴요커들과 평양 풍경의 문명 충돌을 그려와라.” 2008년 2월 입사 4년 차였던 나에게 내려진 ‘지침’이다. 나는 이렇게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평양행 비행기를 탔다. 뉴욕 필하모닉 단원들과 지휘자 로린 마젤(Lorin Maazel, 1930~2014)은 평양에서 45시간 30분을 머물렀다. 당시 미국과 북한의 사이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핵 문제로 대립하던 국면이었는데도, 음악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듯 흘러갔던 때다. 역사에 남는 ‘싱송(Sing-song) 외교’의 하나로 뉴욕 필 평양공연이 열렸다. 아시아나항공사가 내어준 전세기 이름은 ‘1004(천사)’였다. 천사처럼 평화를 전하고 온다는. ‘천사’ 속 뉴욕 필 단원들은 패닉이었다. 나는 베이징에서 그들을 만나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를 함께 탔다. 그 직전에 단원과 기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가 열렸는데, 분위기는 전쟁과도 같았다. p.154-156
어떤 사람은 경쟁을 즐긴다. 낙오할 것 같은 그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짜릿할 때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손열음은 경쟁을 즐긴 게 아니다. 그저 무대, 그 위에서 피아노 연주를 즐겼을 뿐이다. “어려서부터 이상할 정도로 경쟁심이 없었다. 지극히 무경쟁적인 천성을 가져서 주위 사람을 김빠지게 할 정도였다.” 손열음이 〈중앙선데이〉에 연재한 글 중 한 부분이다. 비교하지 않고 자기 소리에 집중하는 천성이 손열음의 이력을 빛나게 만든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혼자 비행기를 타고 국제 콩쿠르에 출전하며 눈부신 소식을 들고 돌아오곤 했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느라 스스로 방해하는 대신 오롯이 자신과 자기 음악에 집중하며 성장해온 피아니스트다. p.182
조성진의 실력은 어린 시절부터 유명했다. ‘기가 막히게 피아노를 잘 치는 소년이 있다’는 소문이 2000년대 초반부터 흘러 다녔다. 2009년 하마마츠 콩쿠르 우승 후 그의 작은 독주를 보러갔다. 잘 배워서 잘 치는 학생 정도가 아니고 음악이 알아서 흘러나오는 연주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움직였고 음악은 스스로 길을 찾아갔다. 당시 독주에서 연주했던 베토벤 ‘열정’ 소나타는 그 직전 콩쿠르에서도 쳤던 곡인데, 두 연주가 전혀 달랐다. 당시 이런 질문과 답을 나눴던 기억이 난다. “콩쿠르 때랑 속도도 다르고 많이 다르네요?” “그건 잘 기억이 안 나는데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친 거라서요.” p.188-189
카플란은 이 한 곡을 평생의 목표로 삼았다. 악보를 읽는 법부터 배웠고 화성법, 지휘법, 음악 이론까지 공부했다. 물론 가정교사를 뒀다. 데뷔는 1983년 마흔한 살 때 했다. 미국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출연료를 받기는커녕 자기 돈을 내고 아는 사람들을 초대해 객석에 앉힌 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독창자를 지휘했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한 일이 생각보다 커진다. 객석과 평단의 호응 끝에 전 세계 50개가 넘는 오케스트라와 말러 2번을 연주하게 된 것이다. 한 곡만 집중적으로 훈련한 카플란의 말러 2번은 웬만한 프로 지휘자보다 나을 때도 있다. 말러의 공식 협회에서 2번 악보를 개정할 때 카플란의 자문을 얻을 정도였다. 재단도 세웠다. 카플란 재단은 말러 2번에 대한 자료를 모두 수집했다. 뉴욕 필하모닉은 말러의 미국 데뷔 10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면서 2번 교향곡 지휘를 카플란에게 맡겼다. p.202-203
지휘자는 무대 뒤에서 많은 부분을 완성한다. 지휘자 최수열은 “무대 위에서는 하나도 긴장이 안 된다. 하지만 연습하려고 만난 첫날은 엄청나게 떨린다”라고 했다. 연주를 하기 전 무대 뒤 연습실에서 지휘자가 하는 일은 대부분 완성된다. 동독의 상징이 된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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