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통령이 518 진상조작보고서에 결재를 하면 반란군이 됩니다

1 month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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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동 국립묘지 518 묘역에 가면 전투교육사령부 소속으로 안장된 손광식 일병의 묘가 있습니다.

손광식 일병의 공적 조서에는 1980년 5월 22일 저녁 7시 40분 광주통합병원 앞에서 출근을 하려다가 총탄에 맞아 사망이라고 되어 있고, 썸네일에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는 양회남이 손광식의 이웃집으로 석유가게 주인인데 손광식이 통합병원 앞에서 총에 맞아 쓰러졌다고 해서 동생과 함께 손광식을 구하기 위해서 통합병원으로 달려갔다고 합니다.

현장에 도착한 양회남은 또 다시 날라 온 총탄에 배를 맞게 되고 이에 같이 갔던 친동생이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손광식을 놔두고 친형인 양회남을 업고 통합병원으로 달려갔고, 양회남은 수술도중에 죽었다고 발표했는데, 민간인이 군 병원에 오게 되면 반드시 어디서 어떻게 누가 쏜 총에 어디를 맞았는지 왜 거기를 갔는지 혼자서 총에 맞았는지를 확인하게 되어 있음에도 병원 당직 의사들과 근무병들이 병원 앞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는 자기들 동료인 정문 경비병인 손광식을 그대로 놔둘리가 없기에 거짓말 인 것입니다.

그리고 손광식은 사망한채 사람들에 의해 광주시내 병원 시신 안치실로 옮겨졌고 28일에야 신원이 밝혀졌다고 발표를 했는데, 이을설 치하에서 손광식이 당일 통합병원 수복작전으로 치열한 교전이 벌어진 상황에서 방위병 복장을 하고 근무를 하러 갔다는 것도 있을 수가 없는 일이고, 통합병원에서 당직자들이 양회남의 입원을 위해 신원확인을 할 때 확인된 병원 근무자인 손광식을 방치했을 리가 없는 일이며, 방위병 복장을 하고 사망한 손광식을 민간 병원 의사들이 신원을 모를리가 없고 특히 사복을 했다고 해도 정문 출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부대패찰 또는 신분증을 소지해야 하는데 절대로 신원을 모를 리가 없는데 어떻게 28일에서야 신원이 어떤 방법과 수단으로 확인되었는지에 대하여서는 이야기 조차 없었습니다.

더욱이, 이 사건은 내용증명을 통해서 518 진상조작위원회에 통보되어 정식으로 민원 접수되었지만, 조사를 거부하기 위해 온갖 불법적 행위를 자행하다가 급기야 4과장에게 동작동 국립묘지에 같이 가서 확인하자고 계속 압박하자 사직을 하기 까지 했었는데도, 최종발표에서 북한군 신분으로 교도대대 조교신분으로 위장해 송암동 오인사격 작전에 참가했다가 11여단 총에 맞아 죽게 되자, 군번이 없는 위장 교도대대 조교 신분이라 국립묘지 안장이 불가능하고 그렇게 되면 북한군이 작전에 참가했다는 사실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군인 신분의 시신 필요성이 대두되자, 오인사격이 진행되고 이을설 부대가 철수한 이후인 25일 이후에 통합병원 방위병을 살해하고 전교사 소속의 계엄군으로 위장해 대리매장을 했던 사실을, 44년 동안 손광식이 전교사 교도대대 매복 조교였다 또는 11여단 63대대 장갑차 운전병으로 90미리 무반동에 직격되어 사망한 이병택 중사가 매복 조교였다고 국민들을 속이다가 발각되자 자신들은 국방부에서 보내 준 자료를 읽었을 뿐이라고 발뺌을 하는 녹음까지 보관되어 있습니다.

518진상조작위원회도 차마 사실이 드러난 상태에서 북한군의 참전사실을 속이기 위해 자신들이 살해하고 대리매장 한 손광식을 22일 사망자로 그대로 발표하지는 못했기에, 공식 조작 보고서에 그렇게 자신들이 자랑스럽게 22일 사망자로 발표했던 손광식을 빼고 보고서를 작성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현재 직권을 남용해 조사를 기피해 검찰에 고발된 518 진조위 4과장의 고발 사실에 추가로 기재 될 것이고, 윤석열 대통령은 이와 같은 518 진상조작 위원회 허위 보고서에 결재를 하게 되면 똑 같은 반란군이 된다는 것을 알려드리는 것인데, 2022년 8월 이 사실은 최초로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 되었고, 윤석열 대통령이 출퇴근 하는 시간에 맞춰 한달간 이 사실을 알리는 표식을 착용하고 1인 시위를 했었기에 대통령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안임을 밝히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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