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작계 80518 전교사의 반란 지휘 -제 4 강의-

5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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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교육사령부와 31사단장이 계엄군인 7공수 시위진압 지휘를 잘못했다는 지적은 많은 사람들이 해왔고, 지만원과 김대령도 이 부분을 세밀하게 지적으로 하면서 그 사례 하나 하나를 제시했었습니다.

전교사 지휘부가 공수부대 진압투입을 작은 병력을 광범위하게 투입해 고의적으로 과잉진압을 불러왔다 또는 31사단장이 7공수 진압부대를 질책하면서 끝까지 쫒아 가 체포하라고 해 과잉진압을 불러왔다는 등 나름대로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모두 다 전투교육사령부가 아시아 자동차에 카빈총을 들고 침입해 군용차 2대를 강탈한 사건은 다루지 않고 은폐했습니다.

나아가 아시아 자동차의 신고를 전교사가 묵살하고 시위예방을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거니와 사건을 확대했다는 사실과 연계를 해 분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육사 출신 장성들이 주축인 전투교육사령부의 반란행위를 은폐하고 덮어 준 결과를 만든 것인데, 바로 이 부분이 518 진실찾기를 떠 벌였던 사람들의 목적이기도 했던 것 입니다.

전투교육사령부는 이미 광주공원에 주둔하고 있는 북한군 1전대와 지휘부와 함께 1대는 나주로 가서 김대중 여단 병력과 예비군 무기고를 격파해 무기를 탈취해 광주교도소 습격 작전계획을 실행하면서 다른 1대는 전남대 정문에서 계엄군 7공수 병력을 기습해 무차별 공격을 한 후에 시내에서 대규모 폭동을 획책하는 작전을 실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바로 이렇게 이런 방식으로 광주에 북한군이 왔다고 떠들어 대면서 정작 결정적인 북한군 작전 증거는 다 빼 버려 반론을 유도하고, 북한군 교도대대 시신과 수협빌딩 집단발포는 단 한차례 언급하지 않고 있어 518 반란 세력에게 민주화 운동 구실을 주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 강의에서 잊으시면 안됩니다.

이런 정황은 앞으로 강의가 진행될수록 더 명백한 증거가 나오고, 그런 증거를 더 깊숙하게 은폐해 주었다는 증거가 나올 것이니, 518 군사반란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새롭게 해 주셔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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