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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조선의 역대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시스템에 순응하여 아첨하고 타협하는 사람들에게는 달콤한 꿀을, 질문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자비한 응징을 가했다. 겉으로는 위민정치를 내세웠지만 실상은 폭압적인 공포정치를 바탕으로 이 양반 저 양반들이 오백년 내내 그들만의 태평성대를 누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어떤가? 남해 캄캄한 물속에 생떼 같은 자식을 묻은 어버이들은 진실의 문을 열어달라며 끼니를 닫는데, 사람들은 몇 백 년 전 그 바다의 영광스런 승리에만 눈 비빈다. 부조리한 세월의 도가니 속에서 우리네 자식들이 그렇게 멍들고 피 흘리는데 가만히 있으라, 그저 가만히 있으면 안전하다고 속삭인다. 굴종하는 이들의 천국, 저항하는 이들의 지옥, 대체 온고지신(溫故知新)의 한국사는 어디에 있는 걸까. -pp6~7
조선의 경우 역시 종교와 철학이 노예제도를 수용했고 경제 여건과 사회적 의식 변화에 따라 노예의 증감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서양의 노예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조선의 위정자들은 종주국 원(元)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노비제도를 고수했던 고려 귀족들처럼 구태의연한 노비제도를 개선하기보다는 개악을 통하여 부를 확대하기까지 했다. 실로 조선이란 나라는 예를 하늘처럼 받드는 동방예의지국인 동시에 동족을 노예로 부렸던 동방노예지국에 다름 아니었다. -pp12~13
《춘향전》의 암행어사 이몽룡이 탄식했던 것처럼 양반들의 잔칫상에서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이 떨어지고, 기생들의 노랫소리 높은 곳에 백성들의 원망소리 또한 높았다. 그 덕에 신분상 천민이지만 수탈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는 월급쟁이 공노비는 일약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궁지에 몰린 양민들은 딸자식을 공노비에게 시집보내기 위해 줄을 섰다. 양난 이후 고삐를 놓쳐버린 행정체계가 조선의 강고했던 신분제도를 뒤흔들었던 것이다. -p122
그 후 태종은 장차 세종이 외척에게 휘둘릴 것을 염려하여 영의정부사에 오른 장인 심온을 처형하고 장모 안 씨를 의정부의 여종으로 내쳤다. 그렇게 청송 심 씨 가문을 멸문시키는 과정에서 태종의 집사 노릇을 했던 박은이 애꿎은 욕을 먹었다. 이때의 참화로 오늘날까지 청송 심 씨와 밀양 박 씨는 혼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당시 조정 중신들이 소헌왕후 심 씨의 폐출까지 논의하자 태종은 눈을 부라렸다.21세기 대명천지의 IT시대에도 무한 반복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국민이 선거를 통해 정치 지도자를 뽑는다고는 하지만 대한민국이 특권층만의 나라여서일 것이다. 서민증세, 부자감세로 굳건하게 유지되는 조세정책만 봐도 그렇다. 대다수 국민은 권력의, 자본의, 서열의 노예에 다름 아니다. 이것의
조선의 위정자들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비인간적인 노비제도를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함으로써 민족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부채질했다. 한데 기자가 가져다주었다는 멋진 선물은 도덕과 질서로 포장되어 오늘날까지 특권과 서열을 당연시하는 풍조를 낳았다. -에필로그 중에서
고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노비의 역사
종주국이라 믿은 중국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지켜낸 노비제도
고조선의 팔조금법에 남자노예를 노(奴), 여자노예를 비(婢)로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부여, 삼한도, 삼국시대도 노비제도는 굳건하게 유지됐고, 고려는 사노비와 공노비로 구분했다. 고려는 종주국이라 믿은 원나라의 ‘동족을 노비로 부리는 게 말이 되는가’라는 조롱 속에서도 노비제도를 혁파할 생각이 없었다. 조선 역시 마찬가지.
오랜 이민족의 지배체제에서 벗어나 건국한 명은 전통적인 노비제도를 혁파하여 노비 신분을 당대로 제한하는 한편 고공(雇工), 즉 일종의 머슴제도로 전환하는 정책을 폈는데 조선에서는 반대로 노비세전법(奴婢世傳法)을 만들어 천역을 세습화했던 것이다. 그처럼 조선의 지배 세력은 중국의 문물과 제도를 숭상하면서도 노비제도만큼은 철저하게 고수했다. -프롤로그 중에서
노비들이 평생 마소처럼 희생하고 매매되었다는 비극적 사실 말고도 조선의 사대부들은 나라의 안위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납세의무나 국방의 의무에서 제외된 노비를 양산함으로써 과중한 부담을 떠안게 된 양인의 삶도 피폐해졌고 국가 재정의 파탄은 물론 국방에도 구멍이 숭숭 뚫리게 된 것이다. 왜란, 호란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이유이다.
노비제도를 혁파하자고 주장한 지식인들이 있었지만
호응하는 세력이 없거나 반대가 심해 탁상공론에 그쳤다.
세종의 아들 영응대군은 무려 1만여 명의 노비를 거느렸고, 선조의 맏아들 임해군은 서울에 300여 명, 시골에 수천 명의 노비가 있었다고 한다. 퇴계 이황은 353명의 노비가 있었고 윤선도 집안에는 700명이 넘는 노비가 있었다. 다산 정약용은 노비 제도 폐지를 극력 반대한 인물이다. 노비들의 막대한 노동력을 이용하여 학자연하고 음풍농월하던 양반들이 노비 제도 철폐란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비를 동족이자 인간으로 바라보고 무거운 멍에를 벗겨주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조헌(1544년 ~ 1592년)은 서얼차별 폐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 경세가였다. ‘16조소’라는 상소문에서 과부의 재혼을 막지 말고 서얼을 등용하며, 노비를 줄여 병사로 선발하자는 등의 구체적인 개혁안을 제시했다.
유성룡(1542~1607)은 노비제도의 혁파만이 무너지는 조선을 일으킬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라고 생각했다. 임진왜란 당시 면천을 조건으로 노비를 모집해 군사를 충당하고 공에 따라 벼슬을 주었다.
유형원(1622~1673)은 자신의 저술에서 노비도 인간이며 동족이란 전제 하에 노비제도의 세습과 비인도적인 박해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일단 노비세습제를 폐지하되 신분의 차별은 한 세대에 한하게 하고, 주인과 노비의 관계를 머슴 같은 고용 체제로 바꾸면 궁극적으로 노비제도를 폐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익(1681~1763)유형원의 학문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실학을 대성했던 성호 이익은 노비제도의 완전 폐지를 주장했다. 현실적으로 당장 노비제도를 없애지 못한다면 백성들의 노비 매매를 금지함으로써 압량위천이나 투탁으로 양산되는 새로운 노비의 출현을 막아낼 수 있고, 결국에는 노비가 사라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영조(1694~1776) 노비제도의 한계를 절감하고 노비들의 신공을 반으로 줄이는 한편 적극적으로 면천 정책을 펼쳤다. 다섯 명 이상의 도적을 잡는 자, 덕행을 실천한 자, 효성이 지극한 자, 정절을 지킨 여자 등을 면천시켰다. 아울러 부유한 노비들이 다른 노비를 매입하여 충당하고 자신은 면천되는 대구속신제도도 실시했다. 서북지역과 남해의 각 섬 지방에 노비추쇄를 금지함으로써 그들이 현지에 정착할 수 있는 길도 열어주었다.
정조(1752~1800)는 노비도 백성이라는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노비들을 해방시킴으로써 조선의 국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1778년 노비추쇄도감을 폐지하는 한편 선두안(宣頭案, 내수사에서 보관하는 노비대장)을 통해 직접 노비문제를 파악했다. 그리하여 1790년에 완전한 노비제도 폐지 및 노비 신분상속 폐지라는 담대한 결정을 내렸지만 급서함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했다.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한 16명의 노비열전
누군들 노비로 태어나고 싶었겠는가
이 책에 등장하는 열전의 주인공들은 노비 중에도 아주 운이 좋거나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자수성가한 인물이지만, 태생이 특별한 인물들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양반이되 어머니가 비여서 얼자, 얼녀가 된 경우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자인 양반 아버지가 신공을 부담함으로써 생활은 풍족했지만 벼슬은커녕 평생 천출이라는 멍에를 벗기 어려웠는데 스스로 시련을 이겨내고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조선 500년 역사 속에서 대다수 노비들은 운명에 순응하며 살았지만 그 중에 몇몇은 제도의 허점과 인간적인 정리, 혹은 거센 저항을 통하여 팔자를 바꾸었다. 물론 그들은 성공한 이후에도 완고한 계급사회의 별종으로 취급당했지만 개중에는 양반들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빼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머리글 중에서
토목전문가라는 전문성으로 천역을 벗어던진 박자청은 조선 초기 경복궁과 주요 왕릉 공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서인의 제갈량으로 불리던 송익필은 정철의 후원으로 정치를 쥐락펴락했고, 매창과의 로맨스로 알려진 시인 유희경은 상례전문가로 명성을 날렸다. 상전의 은덕으로 면천되어 고위 관직에 오른 반석평은 ‘세계 대통령’ 반기문의 선조인데 팔도감사를 지냈고, 전장을 누비는 ‘전령’의 조상 정충신은 충효를 중시하는 유교 사회의 아량을 광고하는 모델로 이용되었다.
세종의 사랑을 받았던 신빈 김씨는 은인자중하여 수양대군마저도 고개 숙이게 했고, 명종 대에 윤원형의 첩으로 들어가 정경부인이 되었던 정난정이 불교부흥을 이끌었다는 새로운 시각도 소개한다. 또 고귀한 공주 신분에서 관노로 추락한 경혜공주, 사노비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았던 현주 이구지 열전도 흥미롭다.
책속으로 추가
조선의 위정자들은 고대로부터 내려온 비인간적인 노비제도를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강화함으로써 민족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부채질했다. 한데 기자가 가져다주었다는 멋진 선물은 도덕과 질서로 포장되어 오늘날까지 특권과 서열을 당연시하는 풍조를 낳았다. 황희 정승이 노비의 자식들과 정답게 어울렸다는 전설, 명장 유극량이 옛 상전 홍섬의 은혜를 입어 면천된 뒤 나라에 충절을 바치다 순절했다는 등의 영웅담은 상명하복을 합리화하기 위한 교묘한 복선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고매한 정치나 학문 외에는 모든 것을 양민과 노비에게 전가하고 유유자적하면서 자신들만의 태평성대를 노래하지 않았던가. 험하게 말하면 그들은 평생 공짜 밥을 먹으면서 공짜 철학을 읊조렸던 것이다. -pp407~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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