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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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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카르타고는 반드시 파괴되어야 한다! l 기원전 146년, 최초의 대량학살
02 울분 속에 머리를 쥐어뜯다 l 1521년, 멕시코 대량살육
03 신의 이름으로 흘린 피 l 1572년, 성 바톨로뮤의 날 대량살육
04 살아 있는 존재 중 가장 섬뜩한 모습 l 1756년, 인도 캘커타 블랙홀
05 완전한 절망이 묻어나는 비명 l 1857년, 마운틴 메도즈 대량살육
06 피로 질퍽한 바닥을 헤치며 걷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네 l 1864년, 샌드크리크 학살 사건
07 잔혹한 부활절 주일 l 1873년, 미국 루이지애나 콜팩스 대량살육
08 순교자의 날 l 1915~1917년, 아르메니아 대량학살 사건
09 내 두 눈으로 그것을 보지 않았더라면 l 1937~1938년, 중국 난징 대량살육
10 무덤의 늑대들 l 1940년 4~5월, 카틴 숲 대학살
11 여성의 협곡 l 1941년 9월 29~30일, 바비야르 대량살육
12 모두 죽여라! l 1944년 12월 17일, 벨기에 말메디 대량살육
13 최악의 정적 l 1960년 3월 21일, 남아프리카 샤프빌 대량살육
14 이것은 나치나 할 만한 행동 l 1968년 3월 16일, 미라이 학살
15 서기 0년의 테러 l 1975~1979년, 캄보디아 대량살육
16 천국과 같이 평화로운 문, 피범벅이 되다 l 1989년 6월 3~4일, 톈안먼 광장 대량살육
17 100일간의 지옥 l 1994년 4~7월, 르완다 대량살육
18 알라신도 지금은 도와줄 수 없다 l 1995년 7월, 스레브레니차 대량살육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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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루이즈가 본 그 군인은 투치족 RPF 멤버였다. 그때 RPF는 대학살이 시작되고 100일 정도가 지난 뒤, 르완다에 쳐들어와 킬갈리를 잡으러 돌아다니던 길이었다. 이들이 들어온 것을 계기로 대량학살은 마침내 끝이 났다. 그보다 훨씬 일찍 국제사회의 개입이 있었지만 마땅히 기대했던 성공은 거두지 못했고 인류 역사에서 거대한 비극이 일어나고 말았다. 세계 다른 나라들에도 르완다의 일이 알려졌다. 1994년 1월 11일, 르완다에 주둔 중이던 UN 평화유지군 사령관 로미오 달레어 장군은 상관들에게 전보를 보냈다. 대량학살이 준비 중임을 알리는 경고문이었다. 그러나 UN은 그가 제공한 정보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미국 중앙정보국 극비 보고서에서도 그 유혈사태가 일어나기 훨씬 전에 이를 예고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르완다와 밀접한 관계에 있던 프랑스와 벨기에 양국 정보부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는 아무것도 취해지지 않았다. 100일 간 살육이 진행되는 동안 빌 클린턴이 대통령으로 있던 미국은 당국 관리들에게 ‘대량학살’이란 단어 사용을 피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정부가 같은 상황에 이 단어 대신 사용하라고 제시한 단어는 ‘혼돈’, ‘무법상태’ 등이었다(대량학살처럼 권력이란 의미가 내포된 단어를 정부 당국이 사용할 경우, 해당 정부는 그 사태를 중단시키기 위해 실제로 무언가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UN 지시문에서도 대량학살 사태가 선포된 국가를 제외한 어떤 나라에서도 이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내부 규정을 마련해 두었다).
국제사회가 이렇듯 르완다 사태에 관여하지 않으려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미국은 소말리아에서와 같은 상황에 또다시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 미군은 1990년 초, 소말리아 내전에 인도주의 차원의 구제방안을 제공하려다 옴짝달싹 못하고 발이 끼고 말았다. 르완다에 일어난 전쟁으로 수천 명에 달하는 투치 족이 목숨을 잃은 것이 그저 민간 피해이기보다는 사실상 계획적인 인종 청소이며 그렇기 때문에 즉각적 해결책과 보다 근본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UN은 이해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이해하고 싶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1997년 미국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아프리카 통일기구에서 가진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국제사회는 1994년 르완다의 그 잔혹행위가 일어난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태를 대량학살이라 칭해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인 1998년 3월, 빌 클린턴은 르완다를 방문했다. 비록 그때까지도 그는 대량학살이란 단어를 사용하진 않았지만 그곳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 세계가 살인은 자연발생적인 것 혹은 사고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와 같은 사건은 한 집단을 체계적으로 파괴하기 위한 수단에서 비롯됩니다.” 이 말의 핵심은 곧 대량학살이란 단어의 정의와 같다.
만약 르완다에서 일어난 것과 동일한 수준의 대량학살이 발생할 경우, 과연 국제사회가 강력히 대응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다. 서글픈 사실은 정치 사회가 주로 이타주의를 으뜸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케네디 공공정책대학원의 인권사업단 대표 사만다 파워는 이런 글을 썼다. “대량학살은 지난 50년간 너무도 빈번히 일어났고 그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도 없다. 최근 발생한 사건의 경우 ‘다시는 되풀이 말자’는 구호보다는 ‘다시, 또다시’란 구호를 붙이는 것이 더 적당할 정도이다. 과거 50년간 제시된 약속과 실행에 옮긴 결과 사이의 격차는 우리를 낙담케 하기에 충분하다.”
그 격차가 앞으로 더 좁아질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느 쪽이든 르완다 대학살은 20세기 역사상 비극적인 대살육 사건 중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1995년 7월, 스레브레니차 대량살육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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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문명사회의 역사는 벽돌이나 콘크리트가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피와 살, 뼈로 세워졌다

세계에서 문명이 가장 발달한 민주국가들과 가장 압제적인 독재국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무고한 생명을 대량학살했다는 것이다. 그 정도와 목적에 차이는 있지만, 논쟁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전 세계 역사에서 거대 단일국가 또는 정치적인 대규모 운동에서 그 결과를 달성하기 위해 대량학살의 힘을 빌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는 것이다.

폭력은 사회의 표면 바로 아래에서 늘 끓어오르는 요소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의식과 의지, 법, 사회적 관습에 의해 억제되고 있다. 전쟁 중인 상황에서도 폭력은 인권조약과 신사도, 전통적인 교전수칙에 의거해 어느 정도까지 제지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 번씩 통제불능 상태로 분출되어 버리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잔혹행위가 촉발된다.
『잔혹한 세계사』에서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과거에 일어난 이 끔찍한 사건 18가지를 다루고 있다. 지독할 만큼 상세한 설명 속에는 종교적 광신과 인종 간의 경쟁, 정치적인 권력 다툼, 복수에 대한 굶주림 등 그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철저한 조사와 사건의 결과가 모두 담겨 있다.

한 예로 기원전 146년, 평상시에는 문명화된 정책의 전형이었던 로마는 이미 정복한 국가 사람까지 끌어들여 아프리카 북부 카르타고를 공격하고, 단 하나의 건물도 남지 않도록 완전히 파괴해 버렸다. 더불어 카르타고인 수천 명을 살육하고 생존자는 모조리 노예로 팔아버렸다.

1864년 겨울, 미국 콜로라도에서는 미국인 민병대가 샤이엔 족 150명을 살해한 사건도 이 책에 소개된다. 피해자의 3분의 2는 여자와 아이들이던 상태에서 총으로 제압하고 죽을 때까지 폭력을 행사한 뒤, 야만인처럼 시체를 훼손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 사건이 북미 역사의 전개 방향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도 함께 나와 있다.

1994년 르완다 후투 족이 돌연 이웃 투치 족과 동료 8만여 명을 살육한 사건도 소개된다. 국제사회가 어째서 이들의 행각을 중단시키려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본다.

이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역사 속 다양한 시기와 문화에 대한 설명과 함께 인간의 충동성과 동기에 관한 통찰을 흥미롭게 제시하고, 더불어 각 사건에 얽힌 복잡한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모든 이야기의 밑바탕에는 ‘그것이 인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깔려 있다.

유감스럽지만, 바로 내일 또다시 대량학살이 일어난다 해도 전 세계가 이를 저지하지 못하는 이상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잔혹한 세계사』에 또 한 사건이 그렇게 추가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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