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아시아, 이병한, 항미원조전쟁, 한국전쟁, 북조선, 임우경, 삼시교육, 중고우호운동, 친미반소, 손해룡, 이승만, 까오리빵즈, 참전군인, 하수인, 아시아냉전,정체성, 비대칭성

9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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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k0Z4eSL9Yh0&list=PLEAeUfw1DucCWlfAroWZZxbeYA5dCsR--&index=498

데뷔작인 《반전의 시대》는 시론(時論)이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정세에 대응해 내 나름으로 때에 맞춤한 논평을 가한 글들이다. 역사에 기반해 시사를 직시한다는 복안(複眼)의 태도를 견지했었다.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유라시아 견문》 3부작은 새로운 세계사를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은근했다. 시론에 이어 사론(史論)에, 대서사(Grand Narrative)에 도전해본 것이다. 그 시론과 사론이 어떠한 학구적 토대 위에서 구축되었던가를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프리퀄(prequel)에 해당한다.(4쪽)

결론을 앞서 말하자면, 필자는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의 균열선의 핵심은 좌우(左右)보다는 고금(古今)이며, 그 가운데서도 탈중화(脫中華)와 재중화(再中華)의 길항이었다고 본다. 명청 교체 이래 동아시아 내부에서는 (소)중화의 보편화 과정이 전개되고 있었다. 만주족이 대청제국을 표방하자 월남은 대남제국을 내세우며 ‘중국’을 자부했고, 조선 또한 중화문화의 계승자라는 자부심을 강화하며 ‘소중화’에서 ‘조선 중화’로 이행했다. (…)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동향을 중화세계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중화세계의 민주화’ ‘중화세계의 평등화’로 독해하는 편이 한층 적실하다는 점이다. 즉 모두가 중화이고 저마다 중화라는 차원에서 기존의 문명적 위계를 대체하는 내재적인 근대화가 전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서 대국-소국 간 현실적 힘의 차이는 여전하였으되, 상국-하국이라는 문화적 위계의 관념은 흐릿해져갔다.(22쪽)

동아시아 냉전체제의 이면에는 중국-아시아 간에 노정되는 비대칭적 구도의 역사적 유산이 복류하며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 특유의 ‘장소성’과 ‘현장성’이 (동)아시아형 냉전 질서의 독특함을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 냉전은 유럽 냉전과 다를뿐더러, ‘제3세계 냉전’으로 일반화해서도 해소되지 않는 남다른 독자성이 뚜렷했다 하겠다. 중국학계의 신냉전사는 이러한 겹겹의 분열·분단 구조에 천착하지 못하는 맹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인식과 실감의 사각지대로부터 새로운 연구의 지평과 개입 가능성이 열린다 하겠다.(62쪽)

서구와 동구, 그리고 동아는 다른 듯하면서도 합일점이 있었다. 저마다 근대를, 그래서 탈중화를 지향했다. 그리하여 서구·동구·동아와 모두 대결했던 동방은 그 속 깊이 중화를 복원하는 재중화의 과정이라 할 법하다. 중국공산당의 창건과 항일전쟁, 국공내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그리고 중소분쟁을 거치며 신중국이 굴기하는 과정을 그 이웃 소국들과 연동하여 ‘중화세계의 근대화’라고 독해할 수 있는 것이다.(101-102쪽)

신중국이, 즉 마오쩌둥이 도전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근대 국제질서의 이념형과 배치되는 냉전체제의 적나라한 현실이었다. 비유컨대 초강대국의 ‘패도’(覇道)에 대한 도덕적 저항이었다. 이를 통해 냉전의 길항 자체가 교란된다. 이념과 체제의 대결에서 ‘패권 대 반패권’의 구도로 전환된 것이다. 즉 미국과 소련의 대결이 주요 모순이 아니라, 미소의 세계패권 추구와 이에 대한 저항이 핵심 모순이라는 인식론적 전환을 촉발한 것이다. 옛말을 빌자면, 패도와 왕도의 길항이 냉전의 요체다. 새 말로 보태자면, 탈중화와 재중화의 길항이 동아시아 냉전의 핵심이다. 신중국은 이러한 언어적 전회, 패러다임 전환을 거치며 양극 질서를 돌파하고 탈냉전의 다극 질서를 일찌감치 준비할 수 있었다.(216-217쪽)

유럽과 동아시아는 탈냉전의 여로도 판이했다. 유럽에서는 동구의 몰락이 서구로의 흡수로 이어졌다. 소련(Soviet Union)을 대신한 유럽연합(European Union)이 출범했다. 사회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의 승리였고, 그래서 ‘역사의 종언’에도 딱 들어맞았다. 반면 동아시아는 여전히 중국과 베트남과 북조선, 라오스가 건재하다. 어느 한쪽 체제의 일방적 와해와 흡수는커녕 중국의 부상과 연동되어 ‘아시아의 세기’를 전망하기도 한다. 이념과 체제의 차이가 여전하면서도 지역적 협력은 나날이 심화되고 있다. 다르면서도 어울리는 평화공존의 원칙이 1990년대 이래 꾸준하게 관철되고 있는 것이다. 1992년 한중 수교와 한베 수교 또한 유럽형 탈냉전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동방형 탈냉전이라 하겠다. 동구와 서구가 주도하며 경합했던 ‘가치동맹’의 시대가 저물고 동방형 질서가 전면화된 것이다. 즉 동아시아의 탈냉전은 ‘역사의 종언’과는 판이하다. 오히려 역사의 반전(反轉)이라고도 할 수 있다.(3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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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붉은 아시아, 지리상의 발견
동아시아 냉전의 재인식, 역사상의 재발견

‘죽의 장막’ 너머의 1945-1991,
잊혀진 절반의 동아시아사

20세기 세계냉전사는 흔히 ‘미국vs.소련’ ‘서구vs.동구’ ‘자유주의진영vs.사회주의진영’ 구도로 발설되고 전자들의 일방적 승리로 귀결된다. 철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 공식을 ‘역사의 종언’이라는 선언으로 발 빠르게 추인함으로써 스타 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이 책 《붉은 아시아》가 들여다볼 냉전기 동아시아의 풍경들은 지금껏 알려진 양상과는 판이한 또 다른 역사의 존재를 암시한다. 저자 이병한은 책의 표제가 가리키는 지리-역사 공간에서 벌어진 ‘다른 역사’를 살핌으로써, 동아시아 냉전사의 재인식을 도모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붉은 아시아’는 “서구와 극동 사이에 위치한 광역의 시공간”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인도네시아에서 우즈베키스탄까지, 캄보디아부터 스리랑카까지, 인도양부터 몽골 초원까지 온통 붉었던” 1945년에서 1991년까지 동아시아 사회주의진영을 가리킨다. 당대 붉은 아시아는 미국은 물론 소련과도 문화적·정치적·군사적 일전을 벌였고, 이념·진영과 무관하게 주변국과 교류를 회복하고 이어나갔다. 요컨대 붉은 아시아에서 벌어진 대결의 축은 ‘자유주의 대 사회주의’가 아니라 ‘패권 대 반패권’에 가까웠다. 그리하여 전 세계 1/3에 달하는 지정학적 공간에서 벌어진 이 같은 이변 혹은 반전(反轉)을 살피는 일은, 상대적으로 사회주의진영의 역사에 소홀했던 동아시아사를 온전히 복구하는 방편인 동시에, 냉전 구도의 연장선에서 오늘날 세계 판도를 G2(미중 양극 구도)로 바라보는 세계인식에 일정한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1945-1991 붉은 아시아’를 세계의 ‘오래된 미래’로 들여다볼 만한 까닭이다.

‘동방’,
붉은 아시아를 읽는 눈

붉은 아시아의 냉전상을 남김없이 살피기 위해 이 책이 제시하는 푯말은 ‘동방’(東方)이다. 저자가 전작들-《반전의 시대》와 《유라시아 견문》 3부작-에서부터 일관되게 강조해온 개념이기도 한 ‘동방’은, 전작들의 학문적 토대라 할 이 책에서 보다 정교하게 구현된다. 동방이란 서세동점과 함께 밀려온 제국주의에 물들기 이전의 중화세계질서, 다시 말해 번부·조공·호시라는 중층적·복합적 체제를 기반으로 대ㆍ소국 간 현실적 힘의 차이는 인정하되 각국의 독립성과 자주성 또한 존중했던 수평적 지역질서의 발전적(근대적) 계승을 뜻한다. 이는 19세기 이후 동아시아에 이식된 제국-식민체제와는 분명히 구별되며, 2차세계대전 이후 미소 패권국-동맹(위성)국의 종속 체제와도 다르다. 이렇듯 저자는 서구(西歐)는 물론이요, 서양의 타자적 개념으로서의 동양(東洋), 소련으로 대변되는 동구(東歐), 일본이 자임한 동아(東亞)와도 분명히 구별되는 지리-문명적 개념으로서 ‘동방’을 제안하고 동아시아에서 이행된 일련의 반제국주의적 근대화 및 탈냉전 움직임을 ‘동방화’로 규정한다. 나아가 동아시아 냉전상을 전통적 지역질서를 계승한 동방과 당대 세계 냉전질서의 대결과 길항, 각축으로 재편해낸다.

동방과 동구의 각축,
재중화와 탈중화의 길항

판이한 두 질서의 대결 양상은 붉은 아시아 전역에 걸쳐 일어났다. 중국은 한반도의 항미전쟁과 인도차이나의 항법·항미전쟁을 지원하는 한편, 중소분쟁을 통해 동구와도 대결했다. 여기에 가네포와 AA(아시아·아프리카)운동을 주도함으로써 동아시아 사회주의진영의 대표로 우뚝 섰다. 이 시기 마오쩌둥이 추구한 삼개세계론·평화공존5원칙·중간지대의혁명 등의 외교적 기치는 ‘복합성’과 ‘포용성’이라는 동방의 정신을 대변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런 동방 문명의 역동성을 중국 스스로 무너뜨리면서 재차 ‘제국’의 모습으로 기울게끔 만든 문화대혁명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변화였다. 베트남 역시 세 차례의 인도차이나전쟁(항법전쟁·항미전쟁·인도차이나 내전)을 거치며 각각 호찌민과 레주언으로 대표되는 동방화와 제국화 사이를 이리저리 방황했다. 후자의 흐름에 소련의 입김이 작용했기에 이 또한 동방과 동구의 길항이었다. 북조선이 친소와 친중을 오가는 동안,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아시아 중심의 AA운동과 동구에 기반한 비동맹운동을 넘나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대결의 전선이 좌우(左右)가 아닌 고금(古今)에 있음을 간파한 저자는 중화세계질서의 구심력과 원심력에 빗대 ‘재중화’(탈냉전)와 ‘탈중화’(냉전)의 길항으로 설명한다. 동방과 동구, 재중화와 탈중화의 교직이야말로 동아시아 냉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붉은 아시아의 유산,
‘다른 백 년’을 위한 세계 판도의 재인식

붉은 아시아에서 벌어졌던 반세기의 각축은 또한 ‘다른 탈냉전’을 낳았다. 우선 ‘역사의 종언’이 무색하게 중국·베트남·북한·라오스 등 동아시아 사회주의국가들은 제각기 정체성을 간직한 채 살아남았고, 주변국과 관계정상화를 이루었거나 도모하고 있다. 한편 세계냉전의 승자였던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국들(일본·대만·한국)은 아직까지 그 종속성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동아시아 주변국과의 관계정상화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일찍이 ‘붉은 아시아’가 미국과 소련이라는 당대 G2의 패권전략에 저항하며 유라시아의 동서남북을 새로이 이어보고자 펼쳐온 다양한 시도들이다. 이는 단순히 동아시아 지역사 차원을 넘어, 오늘날은 물론 앞으로의 세계를 단순히 미중 패권 경쟁 구도로 수용·인식하는 풍조에 균열을 일으킬 만한 역사적 유산이다. 그 균열이 현실화할 때, 이 책이 발굴해낸 붉은 아시아의 가치는 ‘지리상의 발견’을 넘어 ‘역사상의 재발견’에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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