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문화,배리글래스너,질병으로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 기득권은 어떻게비판을피해가는가,은유로서의질병,수잔손택, 바이러스, 에이즈,걸프전쟁,전쟁피로증,프랑스, 장보드리야르

10 months ago

목차
다시 ‘공포의 문화’를 마주하며.
들어가며. 사람들은 왜 터무니없는 공포에 시달리는가

1장. 도로와 학교를 둘러싼 근거 없는 가짜 뉴스들
- 공포는 어떻게 팔리는가

2장. 뉴스 속 범죄와 현실 속 범죄 사이의 간극
- 누가 사실을 왜곡하고 통계를 조작하는가

3장. 무고한 누명을 쓴 청소년과 과잉 보호된 청소년
- 빗나간 진단은 엉뚱한 처방을 내릴 뿐이다

4장. 범죄자를 키운 괴물 엄마로 둔갑한 싱글맘
- 그들은 어떻게 대중의 눈을 다른 곳을 돌리는가

20세기의 마지막 10년 동안 전례 없이 광범위한 분야에서 다수의 매체들이 총동원돼 초당파적인 희생양 만들기 작전이 펼쳐졌다. 댄 퀘일(Dan Quayle), 빌 베넷(Bill Bennett)과 같은 보수정치인들은 물론 제시 잭슨(Jesse Jackson),

컬럼비아대학에서 언론학을 가르치는 데이빗 크라이첵(David Krajicek)은 자신의 책에서 1980년대 범죄 전문 기자로 일했을 당시 피살된 신원 불상의 흑인 남성을 언블리(unblee)라고 불렀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시신이 두어 개 이상 무더기로 발견되지 않는 한, 언블리는 거의 뉴스거리가 되지 않았다. 이런 살인 사건은 일상적으로 늘 일어나는 것이었기에 경찰들도 무신경했고, 그에 따라 기자들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기자들은 흑인 희생자보다 백인 희생자를 더 큰 주목하는 이유를 경찰이 흑인 희생자에게 무관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러한 범죄를 너무 집요하게 취재하다 보면 흑인 집단의 문제점과 병폐를 언론에서 지나치게 부각한다고 항의하는 흑인 단체 지도자들의 핑계를 대기도 한다. 그렇다면 흑인 희생자를 축소 보도함으로써 피해를 보는 사람은 비단 범죄 희생자뿐일까?_5장. 유색 인종에 대한 불공정한 이중 잣대 중에서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이라고 부른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서대로 사건의 중요도를 판단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누군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을 때, 방금 생각했던 것을 대답할 확률이 높다. 언론이 자주 다루는 문제, 방금 신문이나 TV에서 본 것을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할 확률이 높다.
물론 언론에서 강조하는 문제가 실제 문제와 일치한다면 가용성 휴리스틱 현상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불법 마약 위기에 관해 것이라면 현실 관련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국가의 최고 정치 지도자가 퍼트리는 잘못된 정보이기 때문이다._6장.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 약물에 중독된 뉴스들 중에서

내 주장을 계속 펼쳐 나가기 위해 수전 손택의 말에 내 생각을 보태고자 한다. 과학적 지식의 부족으로 이해하기 힘든 치명적인 질환을 이해하기 위해 은유를 활용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직시하고 싶지 않은 사회 문제를 회피할 요량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질병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는 그러한 질병을 ‘은유적인 질병’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은유적인 질병은 바로 신경 쇠약이다. 신경 쇠약은 19세기 미국에서 성행했으며 주로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진단받는 병이다. 증상으로는 극심한 피로, 근육통, 정신 착란, 오한과 열이 난다고 알려져 있다. 앞으로 이야기할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은유적인 질병은 건강 염려증과 다르다. 건강 염려증은 대체로 그러한 염려를 할 만한 증세를 실제로 보인다. 또 병원에 가보면 이미 심각한 상태까지 발전한 경우도 많다._7장. 질병으로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 중에서

기자들은 여행을 취소한 덕분에 자신이나 사랑하는 누군가의 목숨을 건진 사람을 찾아낸다. 〈타임〉의 한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뉴욕에 사는 주부 던 오데이 씨는 지난주 비행기의 안전성 문제를 지적하는 뉴스를 봤다. 불안을 느낀 그녀는 고민 끝에 전화를 걸었다.”
기사는 이제 오데이의 딸, 미스티 이야기로 넘어간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대학을 다니는 미스티는 방학을 맞아 집에 놀러 오기 위해 아메리칸이글을 예약했다. 오데이는 딸에게 비행기 대신 버스를 타고 오라고 했고, 딸은 비행기를 취소했다. 그녀가 취소한 아메리칸이글은 추락해 승객 20명 중 15명이 사망했다. 이 기사를 통해 〈타임〉은 두 가지 오해를 조장했다. 우선 항공사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보도가 곧 목숨을 살리는 보도라는 인상을 줬다. 또한 극히 사소한 개연성을 매우 확률이 높은 것처럼 부풀렸다. 내가 탈 비행기가 사고로 추락할 가능성은 수백만 분의 1에 불과하지만, 마치 확률이 4분의 3 정도는 되는 것처럼 보도했다._8장. 작은 사고도 큰 이슈를 만들 수 있는 항공 사고 중에서

사람들은 왜 일어나지도 않을 것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 《우주전쟁》은 드라마 방송 중에 네 번이나 ‘이것은 허구적인 드라마’라고 안내하는 멘트를 내보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듣고도 못 들은 척했을까? 현대인들은 왜 의학자들이 아무리 아니라고 이야기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새로운 질병을 믿는 것일까? 학대당하는 남편, 버림받는 할머니, 헤로인에 빠진 중산층과 같은 말도 되지 않는 현상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일까? … 뉴스 진행자가 불안을 키우는 발언을 하고 엉터리 전문가를 미화해서 띄워주는 양상은 공포행상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수많은 속임수 중 두 개에 불과하다. 이 책에서 이미 보았듯이, 과학적 증거 대신 가슴 아픈 에피소드를 내세우고, 개별 사고들을 모아 거대한 트렌드라고 밀어붙이고,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싸잡아 원래부터 위험한 종자라고 비난한다. 온갖 다양한 기술이 가미된다._9장. 우주전쟁이 정말 일어났다고 믿은 사람들 중에서

나는 그들이 공포를 자극하기 위해 줄곧 구사해온 기법을 ‘병든 사회 내러티브’라고 부른다.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악당,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영웅, 퇴보하는 문명 사회가 내러티브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9·11테러 이후 전면에 등장한 서술 기법은 국민 통합,

접기
출판사 서평
바이러스와 백신에 대한 공포, 항공 사고, 전쟁, 테러, 인종 차별 …
대중의 불안한 심리를 자극하는 의도적인 가짜 뉴스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 19가 전 세계인의 일상을, 말 그대로 지워버렸다. 미국과 영국, 러시아 등지에서 백신을 개발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며 끝이 보이지 않던 팬데믹의 종식을 선언하는 듯하다. 하지만, 백신 보급이 가시화되기 시작하면서 한쪽에서는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루머와 비관적인 뉴스들이 또다시 대중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기 시작한다. 이처럼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자극하는 뉴스와 목적에 따라 의도적으로 짜맞춘 통계 자료의 등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중과 여론을 자극해 이슈를 바꾸고 힘의 균형을 뒤집을 수만 있다면 미디어는, 정치인들은, 기업들을 매년 돌아오는 유행성 독감부터 전 세계를 마비시킨 팬데믹까지, 개인의 건강에서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전염병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이슈로 만들었다. 전쟁과 테러의 위협이 들끓을 때는 무슬림으로, 인권 차별 문제가 한창일 때는 흑인과 여성으로, 범죄율이 치솟을 때는 청소년과 흑인으로 그 대상을 바꿨을 뿐이다. 그들의 목표는 오로지 하나다. 현실을 조금 더 과장되게, 왜곡되게 알리어 대중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것, 그로 인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여론 조작 저널리즘, 사실을 이기는 루머, 통계의 작위적 해석,
정치적 올바름의 악용, 의도된 사회 갈등…
팩트와 픽션을 절묘하게 뒤섞는 그들의 비열한 눈속임
《공포의 문화》의 저자 배리 글래스너는 미국 정치인들이 사실과 통계를 조작해 대중의 공포를 유발한 다음, 여론을 잠재울 정책을 제시하고 권력을 다지는 데 누구보다 능통하다고 말한다. 그는 그들을 공포행상이라고 정의한다. 또한 “대중은 사랑이 아니라 공포에 반응한다”고 말한 닉슨을 비롯해 청소년 범죄와 10대의 임신 문제를 ‘병든 사회’로 포장한 빌 클린턴, 9·11테러가 또다시 일어날 수 있다면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조지 부시, 미국 정치사의 독보적인 공포팔이 도널드 트럼프까지,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의 공포심을 자극한 미국 역대 대통령들을 소환한다.
또 다른 공포행상인 언론사들도 소위 ‘뉴스가 될 만한’ 이슈들만 선별적으로 다룸으로써 대중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고, 오히려 대중들의 심리를 적극 활용한다는 데서 자유롭지 않다고 강조한다. 기업의 인원 감축과 직장 내 폭력 사건을 절묘하게 이어 붙임으로써 정작 중요한 정리 해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따돌리는 식이다. 또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구분하는 데 있어 인종과 성, 청소년에 대한 잘못된 고정 관념과 오해를 반영하는 편향성도 줄어들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질병에 노출된 환자나 사실보다 과장된 의료 사고 피해자, 항공 사고의 잠재적 피해자일 수 있다는 대중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 보험과 법률 상담으로 돈벌이를 하는 기업도 공포행상의 한 축으로 예외일 수 없다.

그들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더 이상 두려움에 떨지 말라
지금 우리에겐 미디어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1999년에 이어 다시 《공포의 문화》를 펴낸 배리 글래스너는 지난 20년 동안 미국 사회에서 공포의 문화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새로운 공포들이 등장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포들에 맞서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보를 가려내는 힘을 강조한다. 실제로 오늘날 전 세계 미디어에서 가장 예의주시하는 것은 가짜 뉴스와 이를 가려내기 위한 팩트 체크다.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에서는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즉 다양한 정보들을 주체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공포행상들이 만들어내는 가짜 뉴스와 공포심에 휩쓸려 어마어마한 돈과 인력이 낭비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점에 방점을 찍는다. 특정 압력 단체에게만 이권이 돌아가는 정책에 쏟아부은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생각한다면 무엇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대비책이 되는지는 자명하다. 누군가의 나쁜 의도에 의해 공포가 생산되고 대중들에게 확산되는 과정을 살펴보는 이 책이 권력자, 언론, 압력 단체, 기업들이 제시하는 정보들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힘, 더 이상 불안한 심리와 죄책감에 휘둘리지 않는 힘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Loading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