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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Eduard Thurneysen, 1888~1974)

스위스의 신학자, 목회자. 칼 바르트와 함께 변증법적 신학을 발전시킨 대표적인 인물이다. 개혁교회의 실천신학을 정리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목회상담 영역에서 ‘영혼 돌봄’이라는 개념을 정립하여 이론적인 단초를 놓았다. 약 50년 동안 목회와 신학 연구를 병행하였고 강의와 연구, 저술을 통해 목회 현장과 교단을 부단히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1888년 스위스 발렌슈타트에서 태어나 목사 집안에서 자랐다. 바젤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마르부르크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종교사회주의 운동에 관여하기도 했다. 1913년부터 1927년까지 로이트빌과 브뤼겐에서 목회했다. 칼 바르트와 함께 변증법적 신학을 소개하는 〈시간과 시간 사이〉〈오늘의 신학적 실존〉을 간행했다. 1927년부터 1959년까지 스위스 바젤 대성당의 수석 목사로 일했고, 그러면서 1929년부터는 바젤대학교에서 실천신학을 가르쳤다. 저서로 순전히 이론적인 책보다 설교집이나 교회에서의 실천과 관련된 것이 많다. 주요 저서로는 이 책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영혼 돌봄에 관한 가르침》《그분의 손 안에》 등이 있다.

신학이 문학을 경유하여 흥미롭게 전개되는 이 책(원제 Dostojewski)은 20세기 신학의 이정표라 할 수 있는 바르트의 《로마서》가 쓰이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정교회 신자였던 도스토옙스키가 개혁주의 목회자 투르나이젠을 통해 자신이 상상도 못했을 방식으로 현대 개신교 신학에 파문을 일으켰던 것이다. 덧붙여 투르나이젠은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해 설교나 강연에서 도스토옙스키 이야기를 빼놓은 일이 거의 없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그 변화는 어디에서도 목적이나 의도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것을 원하거나 요구할 수도 없다. 그저 길가에 피어 있는 꽃처럼 가만히 서 있다. 게다가 그 길은 특별한 성인이 걸어가는 길이 아니다. 애쓰며 노력하는 사람의 길도 아니다. 누가 봐도 이 세상의 자녀인 이들, 심지어 죄인과 창녀와 살인자, 불안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 언저리에서 피어난다. 용서의 나라로 인도하는 길은 의인의 길이 아니라 죄인의 길이기 때문이다. _147~148쪽

우리는 도스토옙스키의 결백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의 사상에서 이렇듯 엄청나게 돌출되어 있는 비정상적인 모습도 고스란히 그의 것이다. 우리가 인정하고 싶은 것은, 도스토옙스키 스스로가 모든 인간 안에 있는 반항적인 요소를 아주 많이 지닌 채로 살았으며 그것을 그토록 탁월하게 드러내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도스토옙스키 본인이 자신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문제적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성자가 아니다. 금욕주의자도 아니다. 고상한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악마적인 영혼이다. 그는 톨스토이가 아니다. 도스토옙스키다. 그는 이 세상의 이름을 가지고 있고 이 세상의 얼굴을 하고 있다. 그는 인간으로서 우리 앞에 서 있다. 그 역시 자신의 인간성을 통한 굴절 속에서만, 오로지 간접적인 방식으로만 우리의 도스토옙스키이다._155~156쪽

결국 모두의 논문과 무관하지만, 또 동시에 모두에게 도움이 될 만한 투르나이젠의 《도스토옙스키》를 읽기로 했다. 박사과정생의 고된 일상에 부담이 되지 않는 얇은 분량이 모두의 동의를 끌어내는 데 무엇보다도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별로 기대하지 않고 시작된 책 읽기 모임이 진행될수록 모두가 점점 투르나이젠에게 설득되어갔다. 결국 모임을 마무리할 때, 한 친구가 무릎을 탁 치며 “그래, 이게 바로 신학이지!”라고 외쳤다. 정교하고 치밀한 학술적 신학에 지치고 불안한 미래 때문에 중압감에 눌려 있던 젊은 신학도들에게 이 책은 신학이 무엇이고 신학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다시 일깨워줬다. _183~184쪽, 해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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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울어라, 위안을 찾지 말고!
죄인·광인·백치만이 볼 수 있는 빛, 절망이라는 구원에 관하여

“투르나이젠의 발견이 없었다면 나는 《로마서》의 초고를 쓸 수 없었을 것이다.” _칼 바르트

칼 바르트의 《로마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바로 그 책
도스토옙스키 소설 속에서 찾은 새로운 신학의 가능성
고통과 용서와 희망의 변증법을 치열한 언어로 짚어낸 현대신학의 고전

러시아 대문호의 문학과 신학이 하나로 융해되는 거대한 용광로를 보여주는 투르나이젠의 책 《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이 포이에마에서 출간되었다. 현대신학의 흐름을 바꾸는 데 조용하지만 묵직하게 기여했던 이 책은 1921년 스위스의 목회신학자 투르나이젠이 아라우 대학생 총회에서 발표했던 내용을 정리하여 같은 해에 독일에서 출간한 것이다.

당시 30대 초반의 젊은 목사였던 투르나이젠은 신과 인간의 경계를 지우려는 신학이 야기한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을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속에서 찾았다. 이 저작은 당시 독일어권 신학에서 아직 낯선 이름이었던 도스토옙스키를 발견케 했으며, 현대신학의 이정표가 된 칼 바르트의 《로마서》가 타오르게 하는 불쏘시개가 되었다. 이 책의 메시지는 《로마서》 제2판의 중요한 갈피마다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또한 《로마서》의 방대한 사유와 해석이 이 얇은 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인간의 종교심·문화·역사·윤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으로부터 시작하는 신학, 죄와 용서의 긴장을 잃지 않는 신학을 통해 지옥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진실된 위로를 전하며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커다란 울림을 전한다.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던 독자라면 깊이 있는 신학적 관점에서 작품을 재해석하는 재미를 느낄 것이고, 소설을 읽지 않았던 독자라면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을 핵심부터 맛보게 될 것이다.

《죄와 벌》, 《백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 뒤틀린 인물들의 역설
죄인들의 세상, 어린아이 같은 삶이 주는 자유

문학적인 언어로 쓰인 이 ‘문학-신학’은 쉽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우리를 도스토옙스키라는, 불가사의한 원시의 영역으로 인도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도스토옙스키 작품에 등장하는 살인자, 창녀, 주정뱅이, 백치, 죽음을 앞둔 사람과 같이 예외적이고 극단적인 인물들을 만나면서 어느새 베일 아래 감추어져 있는, 수수께끼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도스토옙스키 소설의 인물들은 영원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으나 평범한 인간에도 미치지 못해 파멸하고, 절망 속에서 고통스러워한다. 하지만 바로 이런 과도한 불완전함 때문에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를 알아차리며, 자신도 모른 채 저 너머에 있는 완전한 무언가를 가리키는 존재가 된다. 이렇게 죄 안에서 자신을 재발견하고 다른 사람들과 ‘죄의 연대’를 이룰 때 죄 안에서, 죄와 더불어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이 임한다. 도스토옙스키 소설 속 인물들의 서사와 함께 이루어지는 투르나이젠의 논증을 따라가다 보면 저 멀리서 형형히 비추어 오는 구원의 빛이 보인다.

인간이 지닌 역설성과 복잡성을 이해하는 투르나이젠의 신학은 단순하고 거짓된 희망의 언어로 위로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세속적인 만족뿐만 아니라 정신적 실존의 확실함, ‘기적의 하나님’까지도 포기하고 인생의 짐을 진 채 고통 속에 머물러야 함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금욕적인 순교자의 삶이 아니라 인생이 매 순간 보여주는 것에 대해 온전히, 열정적으로 자신을 내던지며 분노와 부끄러움과 환호성으로 대응하는 어린아이 같은 삶을 살 것을 요청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기꺼이 죄인이 되고 어린아이가 되어,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로워질 것이다.

20세기 유럽에서 탄생한 ‘우정의 저작’
21세기 한국에서 두 신학자의 우정으로 다시 태어나다

아직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1888~1974)은 현대신학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스위스의 목회신학자이다. 그는 칼 바르트와 절친한 벗이자 신학적 동지로 함께하며 변증법적 신학을 발전시켰는데, 바로 이 책이 바르트와의 우정 속에서 탄생한 저작이다.

20세기 초, 젊은 목사였던 투르나이젠과 바르트는 종교사회주의를 통해 부르주아적인 신학에서 벗어날 일차적인 돌파구를 찾긴 했지만 허물어져가는 옛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줄 변혁적인 사상은 아직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예기치 않게 접하게 된 19세기 러시아인의 글이 이들의 사상적 도약을 가능하게 하는 발판이 되어주었다. 이들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을 비롯하여 루터와 칼뱅, 키르케고르를 읽고 토론하며 이전 세대와 구별되는 신학적 사고를 발전시키게 된다.

투르나이젠은 약 5년간의 연구와 토론과 글쓰기를 거쳐 1921년에 현대신학의 최첨단 주제를 발표하는 스위스 아라우 대학생 총회에서 도스토옙스키에 관한 강연을 한다. 같은 해에 바르트는 《로마서》 2판을 탈고하는데, 서문에서 그는 자신의 새로운 성서 해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상가로 도스토옙스키와 키르케고르를 먼저 언급한다. 1933년에 처음 출간된 영어판의 색인을 기준으로 볼 때 《로마서》에서 언급되는 빈도가 가장 높은 인물은 루터도, 칼뱅도, 키르케고르도 아닌 도스토옙스키이다.

이처럼 20세기에 두 신학자의 우정 속에서 탄생했던 책이 백 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 손성현 목사와 김진혁 교수의 우정을 통해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김진혁 교수는 유학 시절 이 책을 처음 읽은 이후로 그 감동과 깨달음을 한국의 그리스도인도 맛보았으면 하는 마음을 계속 품고 있다가, 때가 무르익었을 때 손성현 목사에게 이 책을 소개했다. 칼 바르트의 《로마서》를 번역하기도 했던 손성현 목사는 이번에 1922년에 출간되었던 독일어판을 소리 내어 읽으며 백 년 전 투르나이젠의 강렬한 문체까지 우리말로 옮겼다. 김진혁 교수는 해제에서 이 저작이 탄생한 개인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풍부하게 짚어줌으로써 우리에게는 비교적 낯선 신학자를 우리 앞에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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