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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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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서문

1부 개념
1장 의료화의 배경, 특성, 변화

2부 사례들
2장 대머리는 어떻게 남자의 병이 되었나
3장 성격에서 질병으로
4장 더 크게, 더 젊게, 더 빠르게
5장 질병에서 지향으로

3부 한계와 결과
6장 의료화의 측정과 분류
7장 의료화를 이끄는 주체들
8장 의료화의 사회적 결과들

특히 ‘진단을 구하는 행위’는 성인 ADHD의 등장에서 필수 불가결한 특성이다. 대중매체나 대중서를 통해 ‘자신이 ADHD임을 알게 된’ 성인들은 ‘자가 진단’을 통해(증상 체크리스트를 살펴본 후) 의사를 찾아가 진단을 구했다. 한 정신의학자는 동료에게 “이제 내 진료 업무에서 ADHD는 가장 흔한 자가 진단 증상이 되었다. 직장 내 실패, 이혼, 낮은 동기 부여, 성공의 부재, 만성적인 우울증에 대해 별로 합리적이지도 않은 생물학적 원인을 찾게 될까 두렵다”(131쪽)라는 글을 보내기도 했다. 저자에 따르면 과잉행동 진단이 성인까지 확대된 것은 질병의 생의학적 원인에 대한 과학적 발견 때문이 아니었으며, 많은 성인들이 의사들을 찾아가 자신을 치료하도록 요구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사회적 배경(향정신성의약품의 출현과 정신약물학, ADHD와 관련 있는 것으로 가정된 유전자, 관리 의료에 따른 비용 편익 중심의 약물치료)이 작용했다. 그러나 아동과 다르게 성인 ADHD의 쟁점은 행동이 아닌 성과에 있으며, “자신이 더 잘할 수 있거나 더 잘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성과를 개선하기 위해 도움을 구하는”(141쪽) 것과 연관되어 있다. “ADHD 진단은 이들의 저성과에 의학적 설명을 제공하고 지난 행동들을 재평가할 수 있게 해주며, 문제의 책임을 ADHD에 전가함으로써, 자책할 일을 줄여 준다.”(141, 142쪽)
여기고, “쾌락, 성적 만족, 정신적 안정, 신체적 건강 같은 목표들을 약물보다는 자연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이 낫다고 보는” 약학적 칼뱅주의의 관점을 가진 사회에서 “가짜라는 오명”을 덧씌우는 결과를 낳는다(195쪽).

“키를 15센티미터 더 크게 해주는 생의학적 증강 기술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이 기술이 소수에게만 제공된다면, 이는 이들의 키를 성장시킬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기회도 증진시킬 것이다(사회적 문턱이 낮아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특히 농구[처럼 큰 신장이 유리한 운동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만약 이 같은 증강 기술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고, 거의 모든 사람이 이를 활용한다면, 증강을 통한 경쟁력 제고 효과는 사라진다. (…) 경쟁력 제고 효과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부만이 증강 기술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대부분의 사람이 증강 효과를 얻는다면, 해당 개입은 증강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191쪽)

질병에서 지향으로
“게이로 태어난다.”

한편 의료화의 반대 현상인 ‘탈의료화’ 사례도 적지만 존재한다. 저자는 질병으로 분류되었다가 질병이 아니게 된 것들, 의료인의 개입이 필요하지/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게 된 사례로 자위행위, 동성애를 꼽는다. 그중에서도 동성애는 가장 성공적인 탈의료화의 사례이다. 책은 남성 동성애에 대한 의학적 개념이 등장하고, 이것이 프로이트와 프로이트의 제자들에 의해 치료 불가능한 ‘변형’에서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재정의된 과정, 미국정신의학회가 발간하는 정신 질환 범주 편람(DSM)이나 세계보건기구의 국제질병분류에 의해 의료화되는 과정, 그리고 동성애 운동 진영이 게이 해방 운동을 중심으로 DSM에 수록된 정신의학적 정의와 치료법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벌이면서 이루어진 탈의료화의 과정을 순차적으로 설명한다.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 이사회는 자신의 성적 지향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 사람만 질병이 있는 것으로 보고, “성지향성방해”라는 새로운 진단명을 만들었고, 비로소 동성애는 탈의료화되었다.
동성애에 있어, 네 가지 쟁점, 즉 정신의학의 변화, HIV/AIDS의 등장, 유전학적 발견, 게이 공동체 내 “성적 지향”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탈의료화에 영향을 미친 요인이면서, 탈의료화를 위태롭게 하거나 재의료화를 가능케 할 수도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저자는 동성애는 탈의료화되었지만, 오명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동성 결혼과 군 복무 문제를 둘러싼 논쟁과 차별은 계속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며, 지금으로선 가능성이 낮아 보이지만, 정치적 지형이 변하면 재의료화의 가능성도 있음을 시사한다.

“동성애가 유전학의 영향 아래 놓이는 것에 대한 활동가들의 반응은 뒤섞여 있었다. 일부는 동성애 유전자 가설을 동성애가 자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증거로 보았으며, 따라서 동성애 치료가 가능하다는 주장의 반론으로 보았다. 또 다른 이들은 유전적 치료, 재의료화, 심지어는 잠재적 동성애자인 태아에 대한 대량 학살로 이어지는 첫걸음이 아닐까 우려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의료화에서 중요한 것은 유전학적 발견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해석되느냐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게이 유전자”의 발견에 대한 양측의 주장은 모두 탈의료화를 유지하거나 재의료화를 초래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는 지점들이다. 즉 과학적 증거 자체가 해답을 제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237쪽)

의료화의 사회적 결과들,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것인가? 의료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해도,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말인가? 어떤 사회적 쟁점들이 의료화를 둘러싸고 제기되고 있으며, 이 같은 추세를 왜 우려해야만 할까? 여기서 내가 논의하려는 것은 사람들이 겪는 문제의 의료화가 내포하고 있는 쟁점들로, 이는 의료화의 잠재적 “이익”과는 별개의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의료화에 따른 의학적 또는 사회적 혜택과는 무관한, 의료화의 일정한 사회적 결과들이 있다는 말이다.”(296쪽)

외모, 행동, 생활 방식, 한계, 삶의 모든 과정, 더 많은 부분이 “의료화”되는 추세에 있다. 의사들의 역할은 변화했으며, 의사나 의료 기관뿐 아니라 제약 및 생명공학 산업, 소비자와 소비자단체, 관리 의료 등의 상호작용이 다양한 역학을 생산해 낸다. 그러나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일어나야 하는 일을 설명해야 하는 의학의 권위는 의학적 관리를 정당화하며, 우리는 필연적으로 의료 “전문가”의 공식적 지배와 보이지 않는 영향력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 “의료화는 사회통제의 핵심이다. 어떤 문제가 의료화되지 않았다면 의사들은 해당 수술들을 시행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305쪽)
의료화는 많은 사회적 결과들을 야기할 수 있다. 만약 유전학적 증강이 등장하고 발전된다면, 산전 유전자 개입이 선택권 가운데 하나가 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사람의 키를 조절하는 유전자가 발견되고 이에 대한 유전자조작이 가능해진다면, 신장미달장애라는 새로운 질병이 생겨나고 부모의 취향에 따라 키를 조절하려는 유전학적 치료나 개입을 부추기게 될지도 모른다. 또, 만약 앞으로 FDA의 규정에 변화가 없다면, 소비자 대상 직접 광고는 점차 더 확대되면서, 많은 소비자들을 부추겨 약물적 치료와 개입을 촉진할 것이다. 특히 유전적 위험 요인이 의학적 위험 요인이 될 가능성은 커 보인다. 잠재적 질병의 위험 요인을 초기에 발견하는 기술적 역량이 생기면서 “모두가 잠재적으로 의학적 감시의 대상이 되어, 최후의 건강한 사람마저 사라질지 모른다.”(327쪽)

“의학적 감시는 점점 더 많은 수의 개인을, 심지어 현재 아프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의학적 관심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포함되는 사람들은 질병에 걸릴 위험이 높은 것으로 간주돼, 위험 요인의 변화를 감시받는다. (…) 이제 의학적 시선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 병에 걸릴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로까지 확대됐다. 특정 질병에 대한 취약 유전자가 발견되면, 이 같은 유전자 정보는 잠재적으로 병에 걸릴 사람들의 규모를 확대하는 데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개인들은 이제 잠재적 질병이나 장애의 발현에 대해 감시받게 된다.(304, 305쪽)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회의 의료화가 증가했으며, 의학 안팎의 강력한 사회적 힘이 이를 추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의학의 확장이 사회 진보의 신호이며 인류 전체에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주장에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상태’에 대한 의료화의 만연 또는 과잉 의료화라 부를 수 있는 현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리하여 마지막 장에서는 의료화의 한계 및 사회적 결과를 논의하고, 이를 둘러싼 논란과 저항의 움직임을 다룬다.
저자가 크게 우려하는 것 중 하나는 과잉 의료화가 “인간의 다양성을 병리로 바꾸어 놓는다”는 점이다. 학습 능력의 차이는 ADHD나 학습장애가 되고, 성욕이나 성기능의 차이는 성기능장애가 되는 일. 극단적으로 무언가에 집중하는 행동에는 무조건 ‘중독’ 딱지가 붙고, 개개인의 성격이나 외모 차이에는 사회공포증이나 특발성 저신장증 같은 진단이 내려지는 일. 가슴 크기, 작은 키, 대머리를 의학적 증강이 필요한 문제로 바꾸어놓는 일. 이렇듯 모든 인간적 차이를 병리적으로 접근하며 진단할 수 있는 질병으로 간주하고, 의학적 개입 및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 문제에 대해 지적한다. 그리고 이런 흐름에 ‘저항’하는 움직임들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이를테면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을 의학에서 사회문제로 옮겨 온 장애인 권리 운동이 있다. 장애 운동 진영은 장애인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초점을 맞춰, 장애 개념의 의료화와 장애 통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해 왔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저항들이 대체로 성공하고 있거나 의료화 국면을 뒤집을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의료화라는 바다 위에는 작은 저항의 섬들이 떠 있다”는 표현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그는 의료화가 축소되는 세상을 상상하기는 어렵고,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의료화는 인간의 다양한 문제를 다루는 더욱 주도적인 접근법이 될 것임을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질문은 더욱 큰 무게감을 갖는다. “의료화는 사회조직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결과를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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