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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남한산성에 갇혀 화전양론和戰兩論의 각을 세우며 격론을 벌이던 1월 21일, 이조참판 정온이 외쳤다.
“우리나라는 명나라와 군신의 관계인데 어찌 그 은혜를 잊을 수 있으며 군신의 의리를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하늘에는 두 해가 없는데 최명길은 그 해를 둘로 하려고 하며 백성에게는 두 임금이 없는데 최명길은 그 임금을 둘로 하려고 하니 차마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또 척화신으로 심양에 끌려가 처형되어 삼학사三學士로 칭송받고 있는 오달제는 임금이 수항단에서 ‘삼배구고두례’를 행하기 하루 전, 강화의 조건으로 화친을 배격한 신하를 묶어 보내라는 청나라의 요구로 청군 진영에 끌려갔을 때,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의 친국을 받았다.
“너희는 어찌하여 두 나라의 맹약을 어기도록 하였는가?”
“우리 조선은 신하의 예로 300년간 대명大明을 섬겨 대명이 있음을 알 뿐이고 청나라가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
참으로 기개가 가상하다. 이러한 배청사상은 전란의 혼란과 패배의 와중에 표출된 적개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명나라가 망해 없어진 뒤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조선 사대부들의 골수까지 사무친 대명일월大明日月 사상은 새로운 학문과 문물이 비집고 들어올 공간을 용납하지 않았다.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북학파의 숨통을 조였다. 명이 망하고 300년이 지나 조선이 일제에 강점될 때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왔으니, 조선의 비극이고 소현의 불행이다. --- 「제1권」 본문 중에서

왕명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이경석은 넋 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바라볼 뿐 붓을 잡지 못했다. 그는 정종의 열째아들 덕천군 이후생의 6대손이다. 대대로 명나라를 섬겨온 가문의 후손이다. 그러한 자신이 명나라를 부정하고 청나라를 칭송하는 비문을 남겨야 한다니 도무지 붓을 잡을 수가 없었다. 밤이 깊도록 고심이 이어졌지만 달리 무슨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새벽녘에야 이경석은 목욕재계하고 사당에 들어가 조상께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붓을 잡은 그는 통석을 삼키며 미친 듯이 써 내려갔다. 제 정신이 아니었다. 붓을 놓은 그는 통곡했다. “글을 배운 것이 천추의 한이로다!” 그리고 한 수 시를 남겼다. “수치스런 마음 등에 업고 백길 어계강語溪江에 몸을 던지고 싶구나.”
이렇게 비문은 완성되었으나 비석은 세우지 않았다. 한강 상류에서 장대석을 운반해놓고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칙사가 조선에 나가 삼전도비를 점검하겠다니 세자관에 비상이 걸렸다. 종전 후 청나라에서 처음 보내는 사신인데 중전 책봉, 세자 책봉, 삼전도비 점검에 따라 사신이 세 편이나 되며, 게다가 용골대를 칙사로 하여 100명이 넘는 대규모라고 한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등허리가 더 휘고 국고가 바닥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본국에 긴급 파발마를 띄운 세자는 사신 편수 줄이는 작업에 착수했다. --- 「제2권」 본문 중에서
참담한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낸 소현세자가
절망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희망을 전한다

『오마이뉴스』에 121회에 걸쳐 연재된 작품으로, 소현세자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소현세자 개인사에 머물지 않고 소현세자가 살았던 격동의 시공時空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세자의 부왕 인조의 재위 시기는 우리 역사상 가장 험난하고 무력하고 굴욕적인 장면으로 점철되어 있다. 조선의 수난은 ‘삼전도의 항복’으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그 항복을 수난과 굴욕의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바라본다.

망국의 세자인 죄로 적국의 수도에 볼모로 끌려가 그 긴긴 치욕과 인고의 세월을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소현. 하지만 부왕 인조는 그러는 중에도 자기 한 몸을 보신하기에 급급하여 배청주의자로 지목된 신하들을 사지死地(청국)로 내몬다. 또 건강이 좋지 않은 경황에도 애첩의 치맛바람에 푹 빠져 눈과 귀를 흐려 판단을 그르치고 간신·소인배들에 둘러싸여 백성들의 고단함을 헤아리지 못한다. 더구나 조선 조정은 여전히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대명일월大明日月의 미망에 사로잡혀 화를 자초한다.

심양에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의 중심에서 변화의 바람을 직접 목격하면서 조선의 미래 지도를 구상한다. 또한 청나라를 통해 들어온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흡수하여 새로운 시대 건설에 필요한 설계도를 그려간다. 그 결과 청국 조야의 신망을 얻은 소현은 조선 부흥에 필요한 외교 역량과 정치 기반을 쌓아 가는데, 본국의 인조는 그런 세자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왕위를 잃을까봐 전전긍긍한다.

소현세자는 9년간의 볼모생활 끝에 마침내 부푼 꿈을 안고 세자빈과 함께 환국한다. 그러나 세자에게 의심을 거두지 못한 부왕 인조는 사실상 세자를 연금시킴으로써 세자의 손발을 묶어놓는다. 그러는 중에 세자는 환국 두 달 만에 돌연 급서하는데, 저자는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인조의 애첩 조 소용이 주도한 독살로 본다. 인조는 세자가 죽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세자빈을 세자 독살에 연루시켜 사사하고 소현의 아들들을 유배시킴으로써 세자의 그림자를 말끔히 지워버린다. 이로써 모처럼 싹튼 조선의 호연지기가 꺾이고 조선의 꿈도 가뭇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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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3부 조선에 다시 희망이 있을까
충신 정뇌경, 생존의 그늘, 절망 속의 빛, 권력의 그늘, 중상모략

4부 대륙의 심장에서 홀로깨어
인질 교환, 소현과 인조, 심양의 우울, 숙청의 피바람
저자 소개 (1명)
저 : 이정근 (Lee,Jeong Keun,李廷根) 관심작가 알림신청 작가 파일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이자 방대한 기록의 보고 4,965만 자에 이르는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35년.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작가.

저서
- 『이방원전』(전 2권) 도서출판 가람기획
- 『소현세자』(전 3권) 책으로 보는 세상
- 『이건 몰랐지 조선 역사』 도서출판 책보세
- 『신들의 정원 조선 왕릉』 책으로 보는 세상
- 『수양대군 길에서 길을 묻다』 청년정신
- 『아하 그렇군 뜻밖의 조선역사』 도서출판 책으로 보는 세상
- 『조선 건국지』 도서출판 책으로 보는 세상
- 『간신의 민낯』 도서출판 청년정신
홍타이지의 질환을 통보받은 소현은 착잡했다. 홍타이지는 불구대천의 원수 아닌가. 조국강토를 짓밟고 부왕을 무릎 꿇린 철천지원수다. 하지만 그가 지금 죽는다고 해서 청나라가 약해지고 조선의 국권이 회복될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홍타이지가 죽으면 청나라는 오히려 중원 정벌을 서두를 것이다. 그 통에 더 죽어나는 것은 조선일 것이다. 이미 홍타이지가 죽고 사는 것 하나가 대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진 못할 것이다. 설령 영향이 있다 해도 스스로 강해지고 나서야 대세의 변화를 활용하여 국권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이지, 스스로 강해지지 않고서는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조선은 전쟁에 참패하여 나라를 들어 항복하고서도 조정의 면모를 일신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패전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면피용으로 잠시 물러나 있다가 다시 요직을 꿰차고 앉아 국정을 좌지우지하면서 일신의 보신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임진년 당시 영의정이었던 김류가 그렇고 도원수였던 김자점이 그렇다. 김자점은 병조판서로 고속 승진하는 등 득세하여 임금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있었다. 소현은 부왕의 인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래가지고서는 전쟁으로 피폐한 민심을 달랠 수도 없을 뿐더러 어떤 희망도 키울 수 없을 것이다.
--- 「제3권」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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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망국의 세자로서 볼모생활의 슬픔을 딛고 새로운 조선을 구상했던
소현세자와 그 시대를 오롯이 그려낸,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문제작

작가 이정근은 독특하다. 그의 작품 세계도 참 독특하다. 역사를 소설로 풀어내는 그의 문체는 담백하다. 그 담백한 문체에 담긴 역사의식은 가히 촌철살인이라 이를 만하고 그가 그려낸 등장인물은 독자가 직접 대면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하다. 한 네티즌은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이정근의 작품에 환호하면서 “수백 년 전 인물을 디지털 감각으로 복원하는 내공에 전율한다. 역사소설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했다.
특히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인《소현세자》는 발로 쓴 작품이라서 역사를 더욱 생생하게 살려내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볼모로 끌려간 소현세자의 발자취를 몸소 답사하였다. 남한산성에서 치욕의 현장 삼전도, 삼전나루에서 뱃길을 따라 망원정, 부왕에게 하직인사를 하기 위해 들른 창경궁에서 창릉고개 넘어 임진강까지 더듬어 올랐으나 길이 끊어져 잠시 숨을 고른 뒤에 멀리 에둘러 중국을 통해 압록강에 이르렀다. 다시 압록강에서 만주벌판을 가로질러 심양까지 눈물 어린 역사의 길을 따라 밟았다. 심양에서 소현의 자취를 답사한 후에 북경으로 남하하여 마지막 자취를 더듬었다.
또 이 작품은 주요 등장인물의 대사를 거의 모두 사료에 근거하여 구성하였다. 그래서 소설이긴 하지만 탁월한 리얼리티를 구현하고 있다. 대사마다 그 시대의 세계관과 역사의식이 절묘하게 투영되어 있어 저절로 오늘을 사는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작가는 세계사적인 안목으로 시대를 통찰하고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했던 소현세자를 통해, 국민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그들만의 울타리 안에서 끼리끼리 노닥거리는 이명박 정부와 여당에 경종을 울리고 싶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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