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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국제정치적 차원에서 바라본
한ㆍ중ㆍ일 삼국의 유일한 전면전
‘임진왜란’에 대한 새로운 통사通史

전쟁의 징후부터 주둔군의 완전 철수까지
군사 대결 막전막후에서 펼쳐진
외교 접촉과 정책 대결의 리얼 역사 드라마
임진왜란은 한ㆍ중ㆍ일 삼국이 전면전을 벌인 유일한 사례다. 그간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국제질서의 메커니즘을 연구해온 정치학자 김영진 교수는 전쟁과 같은 중대 상황에서 삼국의 관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살펴보고자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연구에 착수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국제정치 차원에서 4백여 년 전 한반도를 휩쓸고 지나간 ‘동아시아 대전(大戰)’에 대한 그의 새로운 통사적 시도다.
저자는 ‘7년 전쟁’으로 기억되는 왜란에 대한 일반적 통념에서 벗어난다. 전시 상황은 1589년 6월 대마도주의 조선 방문과 통신사 파견 요구로부터 1600년 9월말 명군 지휘부의 철수까지 햇수로 12년. 이 기간 군사적 측면은 물론, 국내 정책 논의와 외교 및 국가간 협상 등 왜란의 비군사적 측면에 저자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인다. 전쟁의 징후로부터 주둔군의 완전 철수까지 군사 접전의 막전막후에서 펼쳐지는 외교전과 정책 대결의 양상들은 입체적으로 재구축되고, 군사 대결 너머에서 전쟁의 향배와 국제관계의 변화를 결정지어온 것들의 의미는 재확인된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임진왜란 연구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했던 다양한 정책ㆍ외교관계 문서들에 대한 치밀한 접근과 분석이 압권이다.

2년 전쟁 12년 논쟁
임진왜란은 왜 7년 전쟁이 아닌가

임진ㆍ정유왜란은 종종 7년 전쟁으로 간주되지만, 실제 군사 대결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임진왜란 시기 그것은 대략 왜군이 부산을 공격한 1592년 4월 중순부터 이듬해 6월 하순 진주성 학살까지 1년 수개월이다. 이후 명군과 왜군 대다수가 철수하고 일부 왜군이 남해안에 주둔했다. 정유재란 시기 군사 대결 기간은 대규모 왜군이 들어온 1597년 5월부터 이듬해 1월 초 울산전투 종료까지와 조ㆍ명연합군이 전면 공격에 나선 8월부터 왜군이 철수한 11월 말까지 약 10개월이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해당 기간은 약 2년 정도다.
그렇지만 저자가 주목하는 상호 비군사적 접촉 기간은 그보다 훨씬 길다. 그 시작은 대략 1589년 6월 대마도주의 조선 방문과 통신사 파견 요구 시점이고, 전시 상황의 종료는 1600년 9월 말 명군 지휘부의 철수다. 무엇보다 군사 대결 중에도 각종 정책 논의와 외교 접촉은 끊이지 않았다. 이렇게 본다면, 그 기간은 햇수로 12년에 이른다. 이 글의 부제가 ‘2년 전쟁, 12년 논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진왜란을 프로파일링하다
군사 대결과 그 너머에서 작동했던 모든 것
그리고 미해결의 문제를 푸는 단서들

이 책은 임진ㆍ정유왜란 당시 주요 사건ㆍ전투들의 편년사와 전란의 시공에서 활약한 역사적 인물들의 정치외교 열전을 함께 직조해나간 역사 드라마인 동시에, 무엇보다 전면과 이면에서 이 전쟁을 작동시킨 모든 힘과 관계의 실체를 프로파일링한 수사 기록이기도 하다.
무릇 전쟁은 단지 군사 대결에만 그치지 않고, 여러 정책 논의와 협상에 의해 그 방향과 결과가 정해지는 중대 사태다. 전쟁을 연구 대상으로 삼을 때, 단순히 그 결과만이 아니라 관철되지 않는 주장이나 정책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아가 전쟁 연구는 시기적으로 군사 대결 기간에 국한하지 않고, 개별 사안과 연동되는 각국의 입장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쟁의 전개 과정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가 가능해진다. 이 책의 기본 입장은 그렇게 세워졌으며, 삼국의 원자료들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정리가 뒤따랐다.
이를테면, 명의 군사적 지원 또는 개입이 왜군 퇴치에 크게 기여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사건을 재구축하기 위해 저자는 군사 개입의 목적, 시점, 규모, 방법, 종전에 따른 철수 그리고 그에 대한 조선의 입장과 대응 등 여러 이슈들을 세부적으로 검토했다. 또한 이와 관련되는 사건으로서 명과 일본 사이에서 진행된 강화(講和) 역시 그 배경과 과정에 면밀한 주의를 기울였다. 저자는 이렇게 분석적인 전 과정을 통해서야 비로소 조ㆍ명관계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전쟁 과정에서 일본의 위상 문제도 치밀하게 분석되었다. 통상 일본은 조공ㆍ책봉질서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간주되는 경향에 대한 문제의식의 발동이었다. 실제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침략은 중국 중심의 질서에 대한 도전을 의미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최초 계획에서 그가 명ㆍ일간 교역이 이뤄지던 중국 영파(寧波)에 중심을 둔 국제질서를 상상한 까닭은 무엇인가, 또 일찌감치 조선조차 정복이 불가능해졌을 때 그가 명 황제의 책봉에 만족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 과연 그는 해당 질서 관념에서 벗어난 것인가 등등. 이에 저자는 전쟁의 각 단계와 상황에서 노정된 일본의 정책들을 면밀하게 분석함으로써 조ㆍ일관계를 포함한 당시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대한 어렴풋한 관념들을 실제화해나간다.

전근대 전쟁사를 들여다보는 국제정치학자의 입체경(鏡)
-“오직 사료(1차 자료)로부터”

통사적 접근 그 자체의 난관을 저자는 이 책에서 오늘날 용이해진 자료접근 방식으로 돌파했다. 이제 언제든 원하는 자료원에 접근할 수 있고, 더욱이 키워드 검색까지도 가능해진 연구 환경을 적극 활용한 것이다. 임진왜란 연구의 기초 자료인 『선조실록』이나 『신종실록』뿐 아니라 당대 여러 인물들의 문집 등 수많은 자료들이 책장에서 뽑아 쓰듯 소환되었고, 장기간에 걸친 사건들의 입체적 구성은 끊임없이 점검되었다.
사실 통사적 기술에서 새로운 자료의 발굴이나 활용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기존 자료들을 다각도로 검토하는 일이다. 그래야만 사건에 대한 정확하고 연속적인 기술이 가능하다. 특히 소통이 많았던 조선과 명의 자료들에 대한 상호 점검은 매우 중요했다. 『선조실록』, 『신종실록』 등의 정사 기록은 관련 인물들의 주장이나 경험에 대한 진술 등으로 보완했으며, 이를 위해 당대 정책 담당자였던 조선의 관료들이 남긴 수많은 문집들이 소환되었다. 정책의 결정자나 수행자로서 유성룡의 『징비록』이나 이순신의 『난중일기』 등은 물론이거니와, 이호민(李好閔), 신흠(申欽), 최립(崔?) 등과 같은 공문서 작성 전담자들의 문집들, 그리고 명과 일본을 다녀온 사신들의 보고서도 적재적소에 활용되었다. 이러한 개별 자료들의 집합적 검토는 그 자체로 성과가 적지 않았다.

-“타국의 새로운 발굴 사료들까지”

여기에 더해, 그간 적극적으로 도입되지 못한 자료들에 대한 접근ㆍ분석ㆍ활용이야말로 이 책의 미덕이다.
먼저 임진왜란 이듬해부터 정유재란 직전까지 3년 반 동안 명군의 조선원정 총책임자였던 손광(孫鑛) 총독의 문집 『요강손월봉선생전집(姚江孫月峯先生全集)』(1814)이다. 이 문헌에는 당시 그가 명 조정의 주요 대신이나 황제에게 썼던 편지와 보고서들이 들어 있다. 그는 그간 중국에서 문장가로 연구된 바 있으나, 조선원정과 관련하여 국내에서 활용된 적은 없었다. 한 국내 대학의 고문헌자료실에서 이 자료를 발견해낸 저자는, 이것이 손광 재직 시기 전쟁의 전개와 조ㆍ명관계를 이해하는 데 없어선 안 될 귀중한 자료임을 강조한다.
두 번째는 정유재란 시기 약 1년 반 동안 손광에 이어 조선 문제를 총괄했던 형개(邢?)의 문집 『경략어왜주의(經略禦倭奏議)』다. 중국에서 후대에 발굴되어 2004년에 처음 공개된 것이다. 이 자료는 국내에 소개되었으나 연구에 제대로 활용되지는 못했다. 돌이켜보면 명의 자료로 이제까지 일부라도 활용되는 것은 『신종실록』과 맨 처음 명의 조선원정을 책임졌던 송응창(宋應昌)의 『경략복구요편(經略復國要編)』 정도다. 또한 조선과 명 사이에 오갔던 외교문서들의 모음집으로 『사대문궤(事大文軌)』(1619)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거의 활용되지 않았다. 1925년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에서 재간행하기도 했으나 일부 기간의 자료들이 망실되어 있다. 그럼에도 주요 사안들을 둘러싼 조ㆍ명의 협력과 갈등을 드러내주는 자료임이 분명하다.
한편 일본의 1차 자료는 조선원정에 직접 참여했던 다이묘 가문에서 출간된 문서모음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서 등 공식적인 문건들에 집중되어 있다. 사실 그간 일본의 임진왜란 연구는 활발했으며, 위 자료들은 국내 연구에도 인용되어 왔다. 다만 저자는 전쟁의 전체적인 과정에서 관련 자료들이 충분히 이용되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표한다. 다행히 얼마 전 일본의 임진왜란 연구 권위자인 기타지마 만지(北島万次)가 『풍신수길조선침략관계사료(?臣秀吉朝鮮侵略關係史料)』(2017)를 편집하면서 관련 문서들을 상당 부분 수록했다. 중세 일본어로 되어 있어 번역하는 데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저자는 관련 연구들을 원용하여 이 책에서 최대한 활용했다.

16세기 동아시아 대전 이후를 관통하는
21세기 패권전쟁에 대한 서늘한 인사이트

이렇게 지난한 경로를 거쳐 재구축된 전란 통사를 앞에 두고 저자는 다시 현재적 출발점에 선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상으로 인해 주변 강대국의 영향력 확대 시도나 침략 가능성이 상존해왔다. 특정 동맹국에 의존한 안보는 순간 효과적일 수 있었으나 동시에 구조적인 불안정성도 엄존했다. 강대국간 세력 변화나 세력 전이는 필연적으로 곤혹스런 선택을 강제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선택을 둘러싸고 늘 국론은 분열되고, 그로 인해 기본 역량조차 발휘하지 못했다. 대개 보수적인 선택으로 인해 한반도는 신흥강대국의 일차적 침략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패턴은-아직 일본이 동아시아 질서를 바꿀 정도에 이르지 못했던-임진왜란 시기보다 극단적인 형태로 병자호란에서 한국전쟁까지 유사하게 반복되었다.
그러하여 저자는 대외적으로 공유될 수 있는 역량을 확장하자고 말한다. 이는 하나의 주어진 동맹이 아니라 자신의 역량과 공유된 가치를 바탕으로 다수의 지원세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최근 확대되고 있는 미중간의 패권경쟁 상황에서 양자택일은 역사의 악순환을 반복하는 것일 뿐, 궁극적 대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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