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6민주당 대표 이낙연 재물문제나 자식문제로 낙마할 가능성 점침

3 years ago

이낙연의 관상과 약력 대통령이 되지 못하고 실격을 당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현 대통령 후보 이낙연의 관상 총평을 보면 우선 이낙연의 눈은 쥐의 눈처럼 매우 총명하고 눈썹 사이인 인당이 넓다. 따라서 그는 최고학과인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수재이다. 또한 이미지가 신사 같으며 디테일하게 사람을 잘 챙기고 언론 대응에 매우 수려하다.
기자 출신 답게 목소리가 잡고 민주당과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여러 재주가 많이 있다.
이마를 보면 훤칠하고 좋은 편이라 소년운 20대 운이 좋아 명문대를 졸업했으나 이마 주름을 보면 위아래 두 개 주름은 있지만 아래 주름은 없으니 백성의 신망을 끝까지 받기 어렵다.
이낙연의 코를 보면 대나무처럼 쭉 뻗어 있어서 매우 재산을 불릴수 있는 코이다. 또한 콧구멍도 안보여 재물을 쓰지 않아 인색한 면이 있고 재물을 상당히 모을 수 있다. 이낙연은 정치를 안하고 사업을 했다면 중년에 매우 많은 돈을 벌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낙연은 이 돈 때문에 낙선(落選)을 할 수 있다.
또한 이낙연은 점칠안과 같은 총명한 눈이 있지만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는 쌍꺼풀 수술[안검 거상술]을 한 점이다. 쌍꺼풀 수술을 해서 눈이 커져 인상이 좋게 하려고 했겠지만 실제는 다르다. 쌍꺼풀 수술은 좋은 인상과 달리 오히려 바람을 피울 수 있으며 관상학적으로 가늘고 길어야 하는 눈과 달리 눈에 손을 댄 것이 매우 실책이다. 만약 여자 문제가 아니면 돈[뇌물수수등] 문제로 크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필자는 이런 경우 추석 명절에 모든 국민들을 성묘와 고향방문을 가지 말라고 하면서 본인은 노무현 대통령 봉하마을을 방문한 것과 같은 사태라고 본다.
또한 이낙연은 눈썹이 짝짜기이며[관상학적으로는 배다른 형제가 있을 수 있음] 미간인 인당이 너무 멀기 때문에 매우 놀라운 짓을 저지를 수 있다.
명궁, 인당, 미간이라고 불리는 눈썹과 눈 사이가 먼 것이다.

미간은 6요란 6개의 별중에는 자기성이라고 눈과 함께 가장 중요한 관상부위이다. 따라서 이름이 명궁이라고 하여 얼굴의 모든 운명을 총괄하는 개념이 들어 있다.

마의상법 관상학에서는 자기성인 인당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www.upaper.net/homeosta
紫氣星, 印堂也,是印堂分明,無直紋, 圓如珠,主人必貴。
자기성 인당야 시인당분명 무직문 원여주 주인필귀.
자기성은 인당으로 인당이 분명하면서 곧은 무늬(주름)가 없고 구슬처럼 둥글면 주로 사람이 반드시 귀하다.
白色如銀樣,主大富貴。
백색여은양 주대부귀.
자기가 은 모양으로 백색이면 주로 크게 부귀하다.
黃者, 有衣食。
황자 유의식.
인당이 황색은 의식이 있다.
如窄不平勻,有隱紋者,不吉.
여착불평균 유은문자 불길.
인당이 만약 좁아서 평균이 안되면서 숨은 주름이 있으면 불길하다.

마의상법의 12궁극응결을 보면 다시 명궁에 대해서 강조한다.
印堂平正命宮牢오,骨起天中是富豪라,
인당평정명궁뢰오 골기천중시부호라.
인당이 평평하고 바르면 명궁이 속에 넣고 뼈가 천중에서 일어나면 부호이다.

거의 여황제가 된 여태후가 이런 관상이다. 또한 약간 팔자눈썹이기 때문에 기운이 약하며 처에 해로울 수 있다. 눈썹이 매우 짧아 행동파이며 생각없는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
또한 모발은 큰 의미가 적지만 모발 자체가 곱슬머리이기 때문에 관상학적으로 곧은 머리인 직모가 좋은 것과 다르다.
이낙연은 눈밑 아래가 약간 주름이 많은데 자식 문제가 생길수 있고 또한 인중을 봐도 약하기 때문에 자녀문제를 조심을 해야 한다.
이낙연 입술은 윗입술이 짧아서 위아래 균형이 맞지 않다.
단 이낙연은 턱이 좋은 편이나 턱의 의지가 너무 세거나 고집을 부린다면 패가망신도 할 수 있다.

이낙연(: 李洛淵, 1952년 12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다.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였고, 제16·17·18·19·21대 국회의원과 제37대 전라남도지사를 역임하였다. 문재인 정부에서 제45대 국무총리를 지냈으며, 현재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재임 중이다.
본관은 전주이며, 조선 태조 이성계의 이복형인 완풍대군의 후손이다. 1952년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면 용덕리에서 아버지 이두만과 어머니 진소임 사이에서 태어났다. 7남매 중 장남인데, 두 형은 어려서 사망하고 위로 누나가 한 명 있는 둘째다. 그의 어머니는 농사일과 채소 장사를 병행하였다. 영광 삼덕초등학교(현 법성포 초등학교), 광주북성중학교, 광주제일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카투사로 입대해 서울 이태원의 미8군 21수송중대에서 근무하고 육군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제대 후 생계를 위해 1978년 한국토지신탁에 입사했으나, 이듬해 동아일보에 취직해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1979년 3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정치부와 외신부 기자로 활동했다. 1989년 12월부터 1993년 4월까지 동아일보 국제부 일본 도쿄 주재 특파원으로 근무했다. 1993년 4월부터 1994년 1월까지 동아일보 편집국 기획특집부 기자로 일했다. 1994년 1월부터 1997년 9월까지 동아일보 정치1부, 정치부, 기획부, 국제부 차장을 역임했다. 1997년 10월부터 1999년 2월까지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지냈다. 1999년 2월부터 2000년 2월까지 동아일보 국제부 부장을 역임하고 퇴직하였다.

국회의원
정치부 기자로 일하던 시절에는 '동교동계'로 불리던 옛 민주당을 출입했다.[13] 1987년 김대중이 사면복권된 후 그의 밀착 취재를 담당하던 이낙연은 취재 과정에서 김대중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14] 김대중은 1989년부터 이낙연에게 총선 출마를 권유했으나, 이낙연은 계속 거절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대통령 겸 새천년민주당 총재 김대중 측의 발탁으로 고향인 전남 함평ㆍ영광에 출마,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했다.[15]

초선 시절 두 차례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을 역임했다.[16] 그리고 2002년 치러진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을 맡았다. 노무현 당선 이후에는 당선자 대변인으로 활동을 이어갔으며, 대통령 취임사 작성도 맡았다. 새천년민주당 대변인으로서 마라토너 손기정 별세 추도 논평을 했다.[19] 2002년 대선 당시 대통령 후보 단일화 추진 협의회 의원들에게 "지름길을 모르거든 큰길로 가라. 큰길을 모르겠거든 직진하라. 그것도 어렵거든 멈춰 서서 생각해 보라."라는 논평을 내기도 했다. 이낙연은 민주당에서 5번이나 대변인을 맡았다.
4선 국회의원을 지내는 동안 203건의 제·개법률안 대표발의했고,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장, 민주당 전남도당 위원장,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도쿄 특파원 시절 쌓은 인맥을 발판으로 국회 한·일 의원연맹 수석부회장 등을 지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국회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시정을위한 특별위원회 간사와 과거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에 들어서 이낙연은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고속철도(KTX)와 대형 국책사업 등의 문제점을 파헤치기 위해 현장 르포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를 위해 서울 용산역부터 광명역, 대전역, 부산역 등을 잇달아 방문했다. 당시 이낙연 의원이 매년 발표하던 국감 르포보고서는 야당 의원들이 국감에서 주로 다루는 ‘정부와 여당 공격형’ 이슈와는 동떨어져 있어 세간의 주목을 크게 받지는 못했지만 뛰어난 현장성으로 화제가 됐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장으로 재직하며 농어가 부채 부담의 일부 완화, 조사료 기반 확충을 위한 경관보전직불제 신설, 농어업 재해보험 확대, 사료구매자금 이자경감, 섬 농축수산물 해상운송비 지원 등의 활동을 했다.
기획재정위원이던 2012년에는 농협, 수협, 축협, 산림조합, 신협, 새마을금고 등 서민금융기관 이용자에 대한 비과세 및 세금감면의 혜택을 3년 더 연장하도록 하여, 그 결과 서민금융기관의 3,000만원 이하 예금 이자와 조합원 출자배당, 조합원 융자서류 인지세는 3년간 비과세되고, 조합의 법인세 감경은 2년간 유지하게 됐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당시 NGO 모니터단으로부터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10차례 선정됐으며, 2009년 국회 농식품위원장 시절에는 '최우수위원장상'을 받았다.
이낙연은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전라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78%의 득표율로 당선됐다.[30] 이낙연은 도지사시절 서민정책과 열린 소통, 따뜻한 리더십을 주장했다. 전라남도의 서민시책으로 '100원 택시','개천에서 용 나게 하는 사업', '주거환경 취약계층 행복둥지 사업', '서민 빚 100억 탕감 프로젝트' 등을 시행했다.
2016년 고용노동부로부터 '일자리종합대상'을 수상하였다. 2017년 1월 15일 여수수산시장에 화재 당시 이낙연은 즉각 현장에 대책본부를 설치하고, 화재 발생 5일 만에 임시판매장을 개설해 상인들의 설 대목 영업을 지원했다. 이낙연은 지사 시절 직원이나 기자들과 막걸리를 마시며 격의 없이 소통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전국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에서 항상 수위권을 차지했으며, 퇴임직전 전국 시도지사 직무수행 평가(2017년 2월 ~ 4월)에서 충남지사 안희정의 뒤를 이은 2위를 기록했다.
이낙연은 2017년 5월 31일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취임하였다. 이 총리는 취임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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