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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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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는 일본의 조선 침탈이 노골적으로 자행되던 1908년 당시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을 썼다. 단재는 이를 통해 이순신을 불세출의 영웅으로 기리고, 국민 한 명 한 명이 제2의 이순신이 돼 국난을 극복하자는 뜻을 담았다. 단재 이후로는 소설가 구보 박태원이 최고의 이순신 전문가로 꼽힌다. 구보는 해방 직후 이순신전을 여러 번 연재했고, 1948년 이순신의 조카 이분이 지은 ‘행록’을 번역하고 주석을 단 ‘이충무공행록’을 출판했다.

오는 28일 이순신 탄생일을 앞두고 출간된 ‘이순신을 찾아서’는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이순신 이야기의 변모를 살펴보고, 단재와 구보가 다룬 이순신을 재번역·해석한 책이다.

책은 크게 해설편인 ‘이순신 서사의 향방’과 자료편인 ‘단재와 구보의 이순신’으로 나뉜다. 해설편에선 단재의 이순신을 축으로 홍명희의 ‘임꺽정’에 등장하는 이순신부터 김훈의 ‘칼의 노래’에 등장하는 이순신까지 이순신의 특징과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살펴봤다.

자료편에서는 단재와 구보의 작품을 번역하고 주석을 실었다. 단재의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은 국한문체에 옛 고어를 많이 사용했는데, 책은 1908년 신문 연재본을 꼼꼼히 대조하고 정확한 번역 작업을 거쳤다. 또 ‘이충무공행록’의 구보의 번역문과 주석을 싣고 최대한 원문 그대로의 맛을 살렸다. 2만원.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Z1LMH9S3M
이순신을 찾아서: 단재와 구보의 이순신
최원식 지음/돌베개·2만원
평론집 문학과 진보를 내고 2018년 8월 한겨레와 만났을 때,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는 다음 작업으로 뜻밖에도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연구를 들었다. 충무공 탄신일(4월28일)을 앞두고 나온 이순신을 찾아서는 그가 그때 ‘예고’했던 책이다. 단재 신채호의 수군제일위인 이순신(1908)과 구보 박태원이 번역하고 주를 단 이충무공행록을 중심으로 삼아 논의하고, 이광수에서 김훈까지 이순신을 다룬 작가들의 소설에 관한 짧은 논평을 곁들였다.
이 책의 연원은 1970년대 중반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의열단의 독립운동 이념과 방략을 천명한 단재의 문건 ‘조선혁명선언’(1923)을 읽고 “감전된” 청년 최원식은 “국문학도로서 단재 연구에 일각의 기여라도 하겠다”는 생각에 단재의 이순신에 주목했으며, “이 작품(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을 단재와 충무의 영전에 바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관련 책자와 자료를 읽고 집필을 시도하다가 몇 번이나 중단한 끝에 이충무공행록에 눈이 미쳐 함께 다루기로 방향을 수정했다. 두 작품이 “충무학의 결정적 두 문헌”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문학평론가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 한겨레 자료사진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단재가 대한매일신보(1908. 5. 2.~8. 18.)에 연재한 국한문본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에 최 교수 자신이 주를 달고 교정한 교주본과 한글 번역본, 그리고 충무공의 조카 이분이 지은 ‘행록’을 구보가 번역하고 주를 단 이충무공행록(1948)에 최 교수가 추가로 주를 단 ‘자료’가 책의 제2부를 이룬다. 1부는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을 다각도로 들여다본 논문과, 이광수의 이순신(1931~2)에서부터 김훈의 칼의 노래(2001)까지 이순신을 그린 소설들에 관한 논평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이순신전을 지어 고통에 빠진 우리 국민에게 양식으로 보내노니, 무릇 우리 착한 남자와 미쁜 여자는 이를 모범하며 이를 보추(빠른 걸음으로 달림)하여 형극의 천지를 답평(평지 같이 다님)하며 고해의 난관을 넘어갈지어다. 하늘이 20세기의 태평양을 장엄하고 제2의 이순신을 기다리나니라.”
말미의 이런 문장에서 보듯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은 “중세의 이순신을 근대로 호출한 첫 작업”이었다고 최 교수는 평가한다. “단재 이전의 충무의 상은 어디까지나 중세적 충(忠)의 윤곽 안에 있었”는데, “단재는 임금보다는 나라 또는 인민에 충성하는 ‘충무’를 다시 서사함으로써 근대적 영웅으로 재창안”했다는 것이다. 평생을 일제에 맞서 독립투쟁에 매진한 단재가 충무공 이순신에 주목한 까닭은 자명하다. “충무를 따라 국민 하나하나가 제2의 이순신이 되는 것, 곧 국민 영웅을 대망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단재는 이순신을 국민이라는 종교의 중심 상징으로 선택”한 것이다. 단재는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이순신이 백성의 어려움을 살펴 헤아렸고 백성들 역시 이순신의 군과 하나가 되어 적에게 맞섰던 면모를 자세하게 그린다. “충무는 백성 속에서 백성과 함께 싸운다.”
단재의 책이 난중일기와 이분의 ‘행록’에 바탕을 두었지만, 기록에 없는 대목을 새로 써 넣거나 기존의 기록을 삭제한 경우도 있다. 난중일기에서 이순신이 전쟁통에도 들에서 일하는 농민들의 모습을 목격했다고만 기록한 대목을 단재는 “군민이 이 난리 중에도 실업에 힘써 혹 보리밭도 고르며 혹 올곡도 거두거늘 이순신이 지나다가 두 번 절하니라”라고 하여 “‘시적 자유’를 행사하여 소설적 왜곡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진실에 다가간 왜곡이라는 게 최 교수의 판단이다. “글자 뒤 그 사람의 마음을 꿰뚫었으니, 단재의 귀신같은 솜씨다.”
단재 이후 이순신을 다룬 작품들로 최 교수는 아홉을 들었는데, 그 첫 편이 뜻밖에도 벽초 홍명희의 대하소설 임꺽정이다. “다음날 큰 난리에 나라를 구하는 데” 요긴할 “인물”이 났다는 말을 듣고 임꺽정이 일행과 함께 어린 순신을 보러 온다. 양쪽 사이에 제법 말이 오가다가 말대답이 공손하지 않다며 꺽정이 순신을 번쩍 들어 패대기치려 할 즈음 아이가 “수염이 좋소”라 말하며 하하 웃었고, 그 말에 꺽정도 순신을 “사뿐 땅에 내려놓”고 돌아섰던 것. “인상적인 두 영웅의 첫 대면”이 재미지다.
이광수의 소설 이순신은 “춘원 작품 가운데서도 최악에 속”하는 “참으로 문제적인 작품이다.” 거북선에 관한 서술이며 원균을 과도하게 악마화하는 등 허구화가 심한데다, “춘원은 이순신을 빌려 ‘야심과 시기에’ 사로잡혀 위인을 헐뜯는 ‘우리 민족의 단점’을 마음껏 저주한다.” “세상의 무식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장을 홀로 밀고 나가는 이순신, 춘원이 창조한 이순신은 바로 춘원이니 참으로 지독한 자기애다.”
표지에 박정희의 휘호를 두른 노산 이은상의 성웅 이순신(1969)이 충무공 우상화를 통해 박정희 정권에 복무했다면, 김지하의 희곡 ‘구리 이순신’(1971)은 “박정희가 마치 분신처럼 여긴 ‘이순신’을 풍자”한 작품이다. 김탁환의 불멸(1998)은 “이순신 서사를 인간화하려는 작가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불멸을 찬미하는 유사-신성 서사로 떨어”졌다. “이순신은 바로 작가”라는 점에서 김훈의 칼의 노래는 “춘원의 이순신으로 돌아간 것”이지만, 염전(전쟁을 싫어함)의 세계관과 “무명의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라는 점에서는 진전을 보인다.
단재와 구보의 작업을 중심으로 한국문학에서 이순신의 형상화 과정을 검토한 최 교수는 단재의 결론을 닮은 말로 책을 마무리한다.
“목하 한국은 중대한 고비에 처해 있다. 이 두 문학이 다른 한반도, 다른 동아시아로 갈 21세기의 장엄을 다시 사유할 살아 있는 교과서 노릇을 겸허하게 감당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생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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