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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years ago

필자의 실크로드 여행은 2004년부터 시작됐다. 첫 발을 디딘 곳은 중국의 서안이 아니라 중앙아시아 한복판이었다. 전혀 상관없다고 여겼던 낯선 문명이 ‘기다린 듯 반갑게’ 다가왔다. 순간, 필자는 실크로드의 낯설음에 깊이 매료되었고, 그것은 강렬한 끌림으로 필자의 가슴속에 ‘내단內丹’으로 남았다.
그로부터 10년 동안 실크로드를 찾았다. 중국 서안에서 출발해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거쳐 지중해를 돌아 이탈리아 로마에 이르는 실로 방대한 길이었다. 필자는 이 여행을 통해 ‘길과 문명’에 대한 생각을 보다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명멸하며 역사와 문명을 만들어내는 길. 끊임없는 생명력으로 되살아났던 바로 그 길.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 가장 자연스레 이뤄지는 길. 다툼과 고립을 넘어 소통과 화합이 화려하게 꽃을 피워내는 ‘위대한’ 길. 이것이 바로 실크로드였다.
- 들어가면서 ‘역사와 문명을 만든 위대한 길, 실크로드’ 중(23쪽)에서

천하의 중심이었고 실크로드의 출발지였던 장안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실크로드가 번성한 것은 당나라 때이지만, 실크로드가 본격적으로 개척된 시기는 한 무제武帝가 다스리던 전한前漢 때였다. 이 때문에 입국 수속을 마친 필자의 첫 목적지도 당연히 무제가 잠들어 있는 무릉茂陵이다.
공항에서 서안으로 들어오는 길 옆 평원에는 크고 작은 구릉들이 흩어져 있다. 그런데 이것들은 단순한 언덕이 아니라, 고도古都 장안에서 중국을 지배했던 황제들의 무덤이다. 서안에는 72개의 능이 있는데, 그곳에는 모두 73명의 황제가 묻혀 있다. 72개의 능에 73명의 황제라니? 그것은 당나라 고종의 건릉乾陵에 중국 최초의 여황제인 측천무후則天武后가 합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 제1부 1장 ‘실크로드의 출발점, 서안에 서다’ 중(23쪽)에서

장안에서 교역을 마친 서역상인들은 수십 마리의 낙타 등에 비단과 도자기 등 새로운 상품을 싣고 하서주랑河西走廊을 통해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넜다. 하서주랑만 넘으면 가격이 10배가 되고 사막을 건너면 100배가 뛰니 어찌 이 일을 마다하겠는가. 죽음을 넘나드는 고난의 길을 통과했기에 이들이 지닌 물건들은 부르는 게 값이 되었고, 서역상인들은 시장의 수요에 따라 공급을 조절하며 더욱 폭리를 취한다. 생산자는 헐값에 넘기고 소비자는 비싼 값에 사야 했으니, 폭리를 취하는 중개인의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매일반이다.
- 제2부 7장 ‘머나먼 서역길, 하서주랑에 서다’ 중(180쪽)에서

“가난한 주종기술자는 아내에게 자식을 맡기고 종을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아내는 먹을 것이 없어 우는 아이를 달래지 못하고 있던 차에, 한 시주승이 찾아와 시주를 하라고 떼를 쓴다. 화가 난 김에 ‘아이라도 가져가라!’고 내뱉은 말이 화근이 되어 시주승은 아이를 데려간다. 기일이 지나도 종이 완성되지 않자 주종기술자들이 차례로 죽임을 당하게 된다. 태수의 불호령은 극에 달하고 시주승의 말을 들은 태수는 곧장 아이를 노爐에 넣어 종을 만들라고 명한다. 드디어 종이 완성되어 타종을 하는데 그 소리가 ‘엄마娘? 엄마’ 하고 울려 퍼졌다.”
우리나라 경주에 있는 신라 성덕대왕신종인 ‘에밀레종’의 전설과 너무도 흡사하다. 아니 똑같다. 우리만의 고유한 전설이 담긴 에밀레종이라고 들었는데, 이역만리에 이토록 동일한 전설이 있다니! - 제3부 13장 ‘서역에서 만난 에밀레종’ 중(356쪽)에서

2012년 6월, 중국 국가문물국은 장성보호공정의 1단계 사업을 마무리하면서 역대 장성의 길이를 2만 1,196킬로미터로 늘려 발표했다. 동쪽으로는 흑룡강성 목단강까지, 서쪽으로는 신강성의 하미까지 그야말로 고무줄처럼 늘려 놓았다. 고구려의 천리장성인 노변강토장성老邊崗土長城, 발해의 목단강변장牧丹江邊墻, 고구려와 발해 때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연변고장성延邊古長城 등이 모두 중국의 만리장성에 포함된 것이다. 이는 동북공정 이후 불안전한 정치논리를 보완하기 위한 것으로 향후 몽골을 포함, 동북 3성과 관련해 한반도에서 발생할 문제에 대비한 치밀한 포석이 깔려 있는 것이다.
- 제4부 16장 ‘실크로드의 길목, 만리장성에 서다’ 중(462쪽)에서

그 옛날 번성했던 실크로드의 요충지에는 제국주의의 문화재 약탈과 파괴의 흔적이 거세게 남아 있다. 그들은 흡족해 했다. 자국의 텅 빈 창고에 타국의 보물들을 빼앗아 채워놓음으로써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고 문화대국임을 자랑했다. 하지만 이런다고 문화대국이 될 수 있을까?
부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부서지고 빼앗기고 산산이 흩어지는 것이 곧 새로운 극락을 건설하는 것임을. 비우고 내려놓고 다 내어줌으로써 보다 새롭게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전 세계가 ‘돈황학’을 공부하고 돈황에 모여 그 가치를 더욱 찬란하게 승화시킬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 제4부 18장 ‘돈황에서 피어난 실크로드의 꽃’ 중(539쪽)에서

저자소개
허우범 [저]신작알림 SMS신청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61
1961년에 인천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교육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8년부터 모교에서 재직하고 있으며 2009년 현재 홍보팀장을 맡고 있다. 독서를 겸한 여행을 좋아해 “책벌레답사회”를 이끌며 매년 테마여행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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