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맥박을 찾아서, 최영하, 포츠담 회담장, 세실리엔호프궁, 히틀러, 한반도 비극, 빌헬름2세, 프로이센, 소련, 영국, 미국, 독일제국사, 노르망디, 북아일랜드, 가우디,체코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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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세계 역사문화풍물 배낭기행 42선選

[서유럽] 7선
1선 영국의 만리장성 하드리안 월 ?10
2선 ‘오 대니 보이’의 고향 북아일랜드 ?14
3선 ‘The Longest Day’ 노르망디를 가다 ?19
4선 베를린에서 읽은 독일제국사 ?24
5선 포츠담 회담장 세실리엔호프 궁 ?30
6선 르네상스의 발상지 피렌체 산책 ?35
7선 천재건축가 가우디 낳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40

[동유럽] 8선
8선 650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화 오스트리아 ?45
9선 보헤미안의 땅 체코 ?50
10선 요한 바오로 2세 낳은 고도 크라코바 ?56
11선 냉전의 심장 모스크바 크렘린 궁 ?61
12선 러시아의 유럽창문 상트페테르부르크 ?66
13선 인류사상 최대의 격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71
14선 사라져 가는 소연방 해체의 주역들 ?75
15선 흑해의 목젖 전략요충 크림 반도 ?79

[북유럽] 2선
16선 세계 제1의 청렴국가 핀란드 ?83
17선 장엄한 자연과 최상의 복지 누리는 노르웨이 ?88

[지중해 권] 9선
18선 3대륙 속의 바다 지중해를 밝힌 이집트문명 ?93
19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모세의 길 ?99
20선 에게문명 - 유럽 최초의 문명발상지 그리스 ?106
21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전설적 로마제국 ?112
22선 지중해의 교차로 시칠리아 섬 ?120
23선 북아프리카 튀니지 카르타고 ?125
24선 안달루시아 적시는 알함브라 향기 ?130
25선 헬레니즘·비잔틴·사라센문화의 보고 터키 ?135
26선 아프리카의 유럽 모로코 ?140

[아메리카] 8선
27선 남북전쟁 점화한 미국남부 찰스턴 ?145
28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무대 애틀랜타 ?149
29선 정열의 라틴 아메리카 ?152
30선 멕시코 칸쿤 반도의 마야유적 치첸이트사 ?157
31선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쿠바 꼬히마르 ?161
32선 세계 해운사를 바꾼 파나마 운하 ?168
33선 골드러시 남미의 관문 컬럼비아 카르타헤나 ?173
34선 에바와 페론의 사랑과 권력 이야기 ?178

[아시아] 8선
35선 사마르칸트, 실크로드의 교차로 ?182
36선 카프카스 산맥과 그 자락의 나라들 ?190
37선 침략자들의 길 아프가니스탄 ?196
38선 무굴제국의 영화 인도 타지마할 ?207
39선 동남아의 보고 미얀마 ?212
40선 맥아더의 영혼이 머무는 필리핀 루손도 ?222
41선 여진족의 땅 만주벌판 ?226
42선 닛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묘 ?232

PART 2 오지奧地 명지名地 테마기행 6선選

[테마기행] 6선
43선 시베리아 횡단철도 역사기행 ?240
44선 파미르고원 2천km를 달리다 ?265
45선 깨어나는 유럽의 오지 발칸반도 배낭 종단 ?275
46선 미 대륙 자동차 왕복횡단 45일 ?309
47선 원색의 대륙 남미 ABC 투어 ?331
48선 대중휴양문화 카리브 크루즈 ?357포츠담 회담( - 會談, 영어: Potsdam Conference, Berlin Conference of the Three Heads of Government of the USSR, USA, and UK, 러시아어: Потсдамская конференция, 독일어: Potsdamer Konferenz)은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독일 포츠담에서 빌헬름 폰 프로이센 황태자의 집이었던 체칠리엔호프 궁에서 개최된 회담으로, 소련, 영국 그리고 미국이 참여했다. 또한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영국의 클레멘트 애틀리와 미국의 해리 S. 트루먼이 각국의 대표로 참가했으며, 회담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5월 8일(유럽전승기념일)에 항복한 나치 독일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지를 논의했다. 그 외에도 전후 질서, 평화 조약 이슈, 전쟁의 영향에 대한 대응 등의 주제도 논의되었다.

지도자들 간의 관계
얄타 회담 이후 5개월 동안 지도자들 간의 관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첫째, 소련은 중동부 유럽을 점령하고 있었다. 적군은 발트해 연안국,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불가리아 및 루마니아를 효과적으로 통제했으며 이들 나라에서 탈출한 많은 난민이 발생했다. 스탈린은 폴란드에서 꼭두각시 공산 정권을 세웠다. 그는 동유럽에 대한 그의 통제가 잠재적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적 수단이라 주장했다.

둘째, 영국에는 새로운 총리가 있었다. 7월 5일 총선이 열렸으나 해외 주둔하는 군인들의 표를 집계하는데 시간이 걸려 포츠담 회담 중에 노동당의 클레멘트 애틀리 (Clement Attlee)로 총리가 바뀌었다.

셋째,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5년 4월 12일에 사망했으며, 해리 트루먼 (Harry Truman)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맡았다. 전쟁과 연합군 단결의 이름에서 루즈벨트는 유럽의 일부에서 스탈린 독재 정권의 잠재적 지배에 대한 경고를 했다. 그는 "스탈린이 그런 종류의 남자가 아니라는 직감이 있다"면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에게 줄 수 있다면 그 대가로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첨부하지 않으려고 하고 나와 민주주의와 평화의 세계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 문제에 익숙하지 않은 트루먼은 연합군의 전쟁 진행 상황을 철저히 따랐다. George Lenczowski는 "그의 비교적 겸손한 배경과 그의 귀족 전임자의 국제적인 매력 사이의 대조에도 불구하고 트루먼은 그에게 순진하고 위험한 것처럼 보이는 정책을 뒤집을 수 있는 용기와 결단력을 갖고 있었다. 또한 그에게는 즉각적이고 종종 전쟁의 요구에 의해 지시된 임시 방편과 해결책이 있었다. 전쟁이 끝나자 연합군의 우선순위가 새로운 도전으로 바뀌었다.

두 강대국은 대중과의 따뜻한 관계를 계속 지켰으나 의심과 불신이 지속되었다. 스탈린은 두 가지 상승 세력 사이에 의혹이 커지면서 미국이 다른 국가로 하여금 미국 정책을 확대하도록 경제적 이익과 성공을 활용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트루먼 (Truman)은 루즈 벨트 (Roosevelt)보다 공산주의자들의 움직임에 대해 의심스러워졌으며 스탈린 (Stalin)에 대한 소련의 의도에 대해 점점 더 의심스러워졌다. 트루먼 대통령과 그의 고문은 동유럽에서 소련의 행동이 스탈린이 지난 2 월 얄타에서 약속한 협약과 양립할 수 없는 공격적인 팽창주의라고 보았다. 또한 포츠담 회의에서 트루먼 (Truman)은 다른 곳에서 가능한 합병증을 알게되었다. 스탈린은 테헤란 회의에서 합의된 일정보다 앞서 이란에서 일찌감치 연합군이 철수한 것에 대한 처칠의 제안에 반대했을 때였다. 그러나 포츠담 회의는 트루먼이 직접 스탈린을 만날 수 있는 첫 번째이자 유일한 시간이다.

포츠담 협정
1. 독일

연합군은 비무장화, 비판, 민주화, 지방 분권화 및 탈핵화와 같은 독일 점령의 목표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각각 얄타에서 원칙적으로 동의 한 4 개의 직업 구역으로 나뉘었고, 마찬가지로 각 수도인 베를린과 비엔나는 4 개 구역으로 나누어져야 한다
나치 전범들이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데 합의한다.
Sudetenland, Alsace-Lorraine, Austria 및 폴란드의 서쪽 부분을 포함하여 유럽의 모든 독일 병합은 취소될 예정이다.
독일의 동부 국경은 서쪽으로 Oder-Neisse 선으로 바뀌어 1937년 국경에 비해 독일의 크기가 약 25 % 감소했다. 새 국경의 동쪽 지역은 동 프로이센, 실레지아, 서부 프로이센 및 포메라니아의 2/3로 구성된다. (이 지역은 독일 중공업의 두 번째로 큰 중심이었던 어퍼 실레지아를 제외하고는 주로 농업중심이었다.)
독일의 새로운 동쪽 국경 너머 남아있는 독일 인구의 "질서 있고 인도적인" 추방이 수행되어야했다.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에서 유고 슬라비아를 제외한 소련에 대한 독일의 점령지에서의 전쟁 배상이 합의되었다. 또한 독일 평화 경제에 불필요한 서부 지역의 산업 역량의 10 %는 2 년 안에 소련에 이양되어야 한다고 합의한다. 스탈린은 소련에 대한 보상금의 15 %를 나중에 독일에 배분하여 폴란드를 배재할 것을 제안한다.
독일의 생활 수준이 유럽 평균을 초과하지 않았음을 보증해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해체할 산업의 유형과 양은 나중에 결정되어야 한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 산업에 대한 연합 계획 참조)
독일 산업 전쟁 잠재력은 군사 잠재력을 가진 모든 산업의 파괴 또는 통제를 통해 파괴되어야한다. 이를 위해 모든 민간 조선소 및 항공기 공장을 해체하거나 파기해야 한다. 금속, 화학, 기계 장치 등과 같은 전쟁 잠재력과 관련된 모든 생산 능력은 연합국 통제위원회에 의해 나중에 결정된 최소 수준으로 감축되어야 한다. 따라서 "잉여"로 만들어진 생산 능력은 배상이나 다른 방법으로 파괴되어야한다. 모든 연구와 국제 무역이 통제되어야하고 경제는 분산화되어야한다. 또한 농업과 평화로운 국내 산업에 중점을 두고 경제를 재구성해야했다. 1946년 초, 후자의 세부 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독일은 농업과 경공업으로 전환되어야한다.
독일의 수출은 석탄, 맥주, 완구, 직물 등으로 이루어 독일 전전 수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공업 제품을 대체한다.
2. 폴란드

세 세력 모두가 인정한 임시 국가 통치 정부 (Lublin Poles)가 창설되어야 한다. (빅 3 (Big Three)가 소비에트 통제 정부를 인정했을 때, 사실상 폴란드 망명 정부 (런던 폴란드로 알려짐)에 대한 인정의 종말을 의미했다.)
영국 군대에서 복무했던 폴란드인들은 폴란드로 돌아갈 자유가 있어야 하며, 공산주의 국가로 복귀할 때 안전을 보장할 필요가 없다.
임시 서쪽 국경은 오더 (Oder)와 네세 세 (Neisse) 강이 정의한 오더 - 니세 (Oder-Neisse) 선이어야한다.
실레지아, 포메라니아, 동 프로이센의 남부와 이전의 댄지그 자유 도시는 폴란드 정부의 감독하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폴란드의 서쪽 국경의 최종 경계선은 평화 정착을 기다려야한다.(1990년 독일과의 최종 합의 조약에서 45년 후)
소련은 폴란드의 배상 청구를 전반적인 배상금 중 자신의 지분에서 해결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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