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사찰, 문화재, 조원창, 임진왜란, 승병, 갑사, 영규대사, 청렴암, 김시민, 청주성, 의병, 밀양박씨, 금산, 칠백의총, 기허, 공주, 고바야가와, 의주, 진영각

2 years ago

승병장. 밀양박씨(密陽朴氏). 호는 기허(騎虛). 충청남도 공주 출신. 계룡산 갑사(甲寺)에 들어가 출가하고, 뒤에 휴정(休靜)의 문하에서 법을 깨우쳐 그의 제자가 되었다.충청남도 공주청련암(靑蓮庵)에 있으면서 선장(禪杖)을 가지고 무예를 익히기를 즐겼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분을 이기지 못하여 3일 동안을 통곡하고 스스로 승장이 되었다.의승(義僧) 수백명을 규합하여 관군과 더불어 청주성의 왜적을 쳤다. 관군은 패하여 달아났으나 그가 이끄는 승병이 분전하여 마침내 8월초 청주성을 수복하였다. 이어 의병장 조헌(趙憲)이 전라도로 향하는 고바야가와(小早川隆景)의 일본군을 공격하고자 할 때, 그는 관군과의 연합작전을 위하여 이를 늦추자고 하였다.그러나 조헌이 듣지 않자 그는 조헌을 혼자서 죽게 할 수는 없다고 하면서 조헌과 함께 금산전투에 참가하였다. 그리하여 조헌이 이끄는 의사와 영규가 거느린 승군은 1592년 8월 18일 금산전투에서 최후의 한사람까지 싸워 일본군의 호남침공을 저지하였다.서울을 버리고 의주까지 피난갔던 선조는 청주성 승전의 소식을 듣고, 영규에게 당상의 벼슬과 옷을 하사하였다. 그러나 영규는 임금이 내린 상사(賞賜)가 도착하기 전에 금산전투에서 전사하였다.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승병이 일어난 것은 그가 최초로서 전국 곳곳에서 승병이 궐기하는 도화선이 되었다. 금산의 종용사(從容祠)에 제향되었으며, 뒤에 법도(法徒) 대인(大仁) 등이 금산 남쪽 진락산(進樂山) 기슭에 그의 영정을 안치한 진영각(眞影閣)과 비를 세웠다.
참고문헌
해동불조원류(海東佛祖源流)『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이능화,신문관,1918)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영규(靈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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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조원창은 공주사범대학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공주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문학석사, 상명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원문화재연구원 및 기호문화재연구원 연구실장, 한양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 겸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얼문화유산연구원 원장, (사)국립공주박물관회 이사로 있다.
주요 저서로 『스토리가 있는 사찰, 문화재 1·2』(2014), 『백제 사원유적 탐색』(2014), 『고려사지와 건축고고』(2016), 『건축유적의 발굴과 해석』(2018) 등이 있다. 그 외에 30여 년 동안 공주 공산성 및 마곡사, 부여 무량사지, 서산 해미읍성, 당진읍성, 경주 안계리사지, 평창 월정사, 춘천 중도유적 등의 발굴조사에 직접 참여하였으며 다수의 논문과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목차
비천상을 따라 하늘로 가는 무령왕릉 왕비 두침
공주의 대통식당은 백제시대의 대통사를 알고 있을까
일제강점기 일본 헌병의 말구유로 사용된 백제시대의 보물 석조
중국 원나라 보탑 양식을 간직한 태화산 마곡사 5층 석탑
마곡사 백련암의 원종스님, 백범 김구
앉은뱅이를 벌떡 일으킨 마곡사 대광보전의 비로자나불
왕실 건물의 상징, 잡상이 있는 계룡산 신원사 중악단
계룡 갑사의 창건을 도운 황소 보살과 공우탑
이루지 못한 오누이의 사랑이 담겨 있는 계룡산 남매탑
임진왜란 때 최초로 승병을 조직한 갑사의 영규대사
신라의 충신 박재상, 고려의 충신 삼은,
조선의 충신 사육신의 혼이 깃들어 있는 게룡산 동학사
38년 동안 만들어진 18m의 미륵보살, 반야산 관촉사 은진미륵
후백제의 패망과 고려의 통일, 개태사와 견훤 왕릉
천호산 개태사의 무쇠 가마솥과 칠갑산 장곡사의 통나무 그릇
네 마리의 도깨비가 숨어 있는 불명산 쌍계사
인간 세계에 내려올 미륵불을 기다리는 안국사지의 매향암각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의 필력이 살아 있는
성주사지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인적 없는 산골짜기에 활짝 핀 백제인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
섬인가 육지인가, 피안의 섬 간월도 간월암
서산에도 돌이 떠 있는 부석사가 있다
고려시대 미완성의 마애불이 남아 있는 성불사와 만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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