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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 머리맡을 지켜주던
문학작품 속 그녀들을 만나러 아메리카로 떠나다
책 속 세계와 현실의 경계에 살고 있는 ‘꿈꾸는 자’들을 위한 여행기
이야기를 먹고 자라던 어린 시절, 왠지 모르게 더 애틋하고 마음이 가던 책속 친구들. 이름도 낯설고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도 다른 그 친구들이 다른 나라 어디엔가 살아 있을 것만 같다고 느껴지곤 했을 것이다. 그런 믿음을 안고 ‘어릴 적 그 책’ 속 그녀들을 만나러 독서 여행자 곽아람이 아메리카로 떠났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의 타라 농장이 있었을 법한 존즈버러와 자전적인 소설 『작은 아씨들』을 쓴 루이스 메이 올콧 네 자매가 살았던 콩코드의 생가, 『빨강 머리 앤』의 배경이 된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고향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개츠비가 하염없이 바라보던 검은 바닷물 너머 초록 불빛의 이스트에그의 모델이 된 뉴욕주 샌즈포인트를 찾아가는 여행. 그런 여행의 기록들을 모은 독서 여행 에세이 『바람과 함께, 스칼렛』이 출간되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서재에서 발견한 세계 명작 전집을 비롯해 수많은 문학작품들을 탐독하는 문학소녀였던 저자는 “소설 속 장소들을 갈망하며 그중 어떤 곳엔 반드시 가보리라 결심”했었다. 성인이 된 그는 1년간 미국에서 연수하는 동안 특히 마음에 담아두었던 문학작품 속 배경이 된 장소들을 찾아가는 여행을 기획하였다. 뉴욕을 거점으로 한 대부분의 여행지는 미국 동부와 남부를 아우르며, 헤밍웨이가 살던 집이 있는 쿠바 아바나와 캐나다의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로까지 이어졌다. 혼자, 또는 같은 책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기에는 어린 시절 책 속 그녀들이 저자와 친구들에게 끼친 영향과 현재 그녀들의 도시에서 어른으로서 공명하며 느낀 감회가 진솔하게 드러나 있다.
이런 낭만적인 기행에 있어 『바람과 함께, 스칼렛』 곳곳에 배어나는 저자의 단단한 독서력은 4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알차게 채운 문학의 곳간에서 비롯되었음이 여실히 보인다. 또한 미국 현대사의 유산이기도 한 도시 곳곳의 유적지를 탐방하는 데에는 문화부 기자로서 세계 곳곳을 출장 다니며 쌓은 저자의 안목이 빛난다. 저자는 책에 등장하는 문학작품들에 대한 애정을 담아 스스로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던, 또 여행과 어울리는 문장들을 원문과 함께 실었다.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목차
서문
강인한 여성을 만든 남부의 바람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그리고 마거릿 미첼
× 조지아주 애틀랜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조지아주 존즈버러
- ‘숙녀’가 하지 않을 법한 일, 애틀랜타
- 나쁜 남자의 도시, 찰스턴
- 이야기의 씨앗이 된 동네, 존즈버러
- 다시 애틀랜타, 그녀의 타자기
당찬 여성을 빚어낸 우아한 어머니의 도시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엘런
× 조지아주 서배너
- 영혼을 송두리째 남겨두고 온, 서배너
- 강인하고도 ‘특수한’ 여성들의 도시, 서배너
- 스칼렛 유년의 모태를 엿보며, 서배너
환상 속 이데아와 같은 태곳적 순정
: 「에반젤린」의 에반젤린
× 메인주 아카디아 국립공원
- 사랑의 근원을 알려줄 법한 태고의 자연, 아카디아 국립공원
에이미의 재발견
: 『작은 아씨들』의 조와 에이미
× 매사추세츠주 콩코드
- 자매들의 이뤄진 꿈이 녹아 있는, 콩코드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히 오해받을 때
: 「영 굿맨 브라운」의 페이스, 『주홍 글씨』의 헤스터 프린
× 매사추세츠주 세일럼
- 마녀사냥의 진원지, 세일럼
‘긍정의 아이콘’에게도 삶의 질곡은 있었다
: 『빨강 머리 앤』의 앤
× 캐나다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 문학 소녀의 낭만 속 번화가, 샬럿타운
- 부푼 소매의 드레스가 걸린 초록 지붕 집, 캐번디시 & 뉴런던
- 어쨌든 ‘나의 작은 꿈의 집’, 캐번디시 & 샬럿타운
에밀리에게 장미를, 뉴올리언스에 승리를
: 「에밀리를 위한 장미」의 에밀리
×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 여인들의 신비로운 전설이 가득한, 뉴올리언스
헤밍웨이의 여인들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마리아, 『무기여 잘 있거라』의 캐서린
× 쿠바 아바나, 플로리다주 키웨스트
- 헤밍웨이의 세 번째 신혼집, 산프란치스코 파울라
- 사자의 꿈을 꾸는 방파제, 코히마르
- 떠나간 남자와 남겨진 여자의, 키웨스트
그 시절 소년이 좋아했던 고향의 소녀
:『톰 소여의 모험』의 베키
× 미주리주 해니벌
- 재담가 대문호를 낳은 벽촌, 해니벌
- 마크 트웨인의 노스탤지어가 담긴, 해니벌
창작의 신열과 타나토스의 그림자
: 『마지막 잎새』의 수와 존시
× 뉴욕주 뉴욕
- 고단한 예술가들의 도시, 뉴욕
욕망할 만한 여인이어서가 아니라 욕망하기 때문에
: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
× 코네티컷주 뉴헤이븐(New Haven, CT), 뉴욕주 샌즈포인트, 뉴욕주 그레이트넥, 뉴욕주 킹스포인트
- 유럽보다 더 유럽 같은, 뉴헤이븐
- 재즈 시대 황금 물결의 잔향, 샌즈포인트 & 그레이트넥
- 지니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 킹스포인트 & 그레이트넥《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남자 주인공 레트 버틀러의 세련된 취향과 매너, 나쁜 남자다운 기질과 매력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고향 찰스턴은 무척이나 멋스러우면서 산뜻한 곳이었다. 역사가 오래된 유서 깊은 도시. 유럽풍의 우아한 저택(찰스턴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속하지만 그 저택들은 조지아 양식이다)들이 해안 야자수 도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었다.
비옥한 땅을 지닌 농장주들의 도시로, 남부의 여러 도시들 중 특히 보수적인 곳. 이 지역 명문가 자제인 레트 버틀러는 함께 야반도주했던 여자와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문에서도 쫓겨나고 지역사회에서도 배척당한다. 그러나 그는 남북전쟁 시기 찰스턴의 레이스며 옷감을 애틀랜타로 실어 날라 판매하는데, 그 거리가 장장 500킬로미터……. 전날 애틀랜타에서 다섯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찰스턴으로 온 나는, 찰스턴과 애틀랜타 간의 거리가 서울-부산 간 거리보다 더 멀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그렇다면 전쟁 통에 찰스턴과 애틀랜타를 오가며 사업을 한 레트 버틀러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기차로 짐을 실어 날랐다 해도 19세기 후반엔 과연 며칠이나 걸린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강인한 여성을 만든 남부의 바람」중에서
낮 워킹 투어 때 서배너의 여권女權이 미국 다른 지역보다 강하냐고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더니 “특수하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남부 조지아에선 18세기에 이미 여성이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어서 여권이 셌고, 전쟁을 겪으면서 미망인들이 억척스럽게 활약했다고 한다. 서배너 도시 계획에 큰 역할을 한 여자도 미망인인데 두 번 결혼했다고. 또한 텔페어 미술관을 설립한 메리 텔페어는 서배너의 한 주요 기구 수장이 여자라는 조건하에 기금을 내겠다고 밝혀서 그 기구는 지금도 수장이 여자이고 텔페어 기금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스칼렛 같은 여성이 탄생한 건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다. 어떻게 보면 농장이 주요 산업인 남부 특성상 여자가 농장 안살림을 다 해야 하므로 여권이 셀 수밖에 없었지 싶다. 다비드의 명화 「사비니의 여인들」에 필적할 만큼 용감한 ‘사바나의 여인들*’……. 그 여인들을 낳은 도시, 우아하고 꿋꿋한 엘런의 도시에서 또 하룻밤이 흘렀다.
---「당찬 여성을 빚어낸 우아한 어머니의 도시」중에서
“샬럿타운행 비행기가 곧 출발하니 승객 여러분께서는 탑승 바랍니다.”
몬트리올 공항Aeroports de Montreal에서 환승을 기다리다 영어와 프랑스어로 이 문장을 들었을 때 ‘샬럿타운’이라는 단어에서 잠시 꿈속에라도 있는 듯 어리둥절했다. 소설에서 일종의 ‘읍내’로 그려지는 곳, 시골마을 에이번리에 비해 번화한 대처로 묘사되던 그 샬럿타운에 내가 비행기를 타고 가고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내려 마침내 그 섬,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의 땅을 밟았을 때, 아, 내게도 이런 일이 마침내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랫동안 이 순간을 그려왔었다.
몇 년 전 《빨강 머리 앤》을 국내에 처음 번역해 소개한 아동문학가 신지식 선생을 인터뷰하러 댁에 갔을 때 선생이 보여주시던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사진을 보면서 반드시 가보리라고 마음을 다졌을 때나, 연수 와서 여행 계획을 짜면서 각종 블로그에서 이 섬 여행기를 읽을 때도, 나도 꼭, 이 땅의 붉은 흙을 밟아보아야지, 했었다.
---「‘긍정의 아이콘’에게도 삶의 질곡은 있었다」중에서
성당 입구에는 성 루이 조각상과 함께 한 여인이 서 있었으니, 바로 오를레앙의 성녀 잔 다르크. 뉴올리언스New Orleans란 ‘새로운 오를레앙’이라는 뜻이라는 걸 나는 기억해냈다. 기독교의 역사란 기본적으로 전쟁의 역사이고, 기독교의 신은 그래서 전쟁의 수호신이다. 전날 갔던 우르술라 수녀원도 이 도시를 전쟁의 승리로 이끌어달라는 기원이 담긴 곳이고, 성모 마리아는 승리를 가능케 하는 위대한 모성인 것이다.
12시에 미사가 시작되었고, 열 명 좀 넘는 신도들을 놓고 사제는 미사를 집전하였다. 성가도, 파이프오르간도, 헌금도 없는 간략한 미사.
에어컨 바람에 덜덜 떨며 나는 기도했다. Lord, have mercy. Christ, have mercy.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 가엾은 에밀리에게 장미 한 송이를 건네주고 싶었던 포크너와 같은 자비를.
---「에밀리에게 장미를, 뉴올리언스에 승리를」중에서
집을 둘러보며 내내 기분이 묘했는데 아마도 쿠바의 헤밍웨이 집을 미리 보고 왔기 때문인 것 같았다. 두 집은 쌍둥이처럼 닮아 있었다. 집필실이며 풀장이 있는 구조, 뜰의 고양이 무덤, 벽에 걸린 동물 박제까지. 두 집이 닮은 건 헤밍웨이의 취향 때문일까, 아니면 폴린의 취향 때문일까. 키웨스트의 집에 비해 쿠바의 집이 관리가 부실한 것이 눈에 띄어 속상하기도 했다. 피델 카스트로는 집권 후 쿠바 내 미국인들의 재산을 모두 국가에 귀속시켰고, 유럽에 있던 헤밍웨이는 다시 쿠바로 돌아오지 못해 수천 권의 장서가 있는 쿠바 집을 몽땅 빼앗긴다. 그 집 덕에 지금 쿠바 정부가 엄청난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헤밍웨이의 여인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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