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재 이상설 평전"을 읽고.

8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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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2019.04.16 17:55
* "보재 이상설 평전"을 읽고.(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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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매주 토요일마다 참석하고 있는 '인물중심근현대사연구회'를 통해 접한 두 번째 순국선열은 '보재 이상설' 선생이다. 첫 번째는 '김구' 선생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상설' 선생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분이었다.
일제의 '이등박문'을 총으로 쏴죽인 의열투쟁으로 후세의 존경을 받는 '안중근' 선생이 순국 전 감옥에 있을 때 자기가 만난 사람들의 인물평을 했는데, '이상설'에 대해서는 식견이 깊고 넓다며 최고로 존경했다.

'이상설'은 우리가 아는 독립운동가들 중 조선왕조나 대한제국에서 최고위 관직(참찬)을 지낸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에게는 '헤이그(만국평화회의) 특사(밀사) 사건으로 가장 유명하게 알려졌다.

헤이그 특사 사건에서 '이준' 검사가 순국한 것이 유명한데, 당시 '이준' 검사는 부사였고, 그 정예 트리오(trio)의 정사가 '이상설'이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상설'의 활약 중 가장 빛나는 사건이 헤이그 특사 사건이었는데, 그 전에도 특기할만한 사건이 있었다.

'이상설'은 조선시대 고등고시에 해당하는 과거에 급제하여 잘나가는 고위 공무원이었다.

서기 1905년 일제의 을사늑약 당시에 그는 고종 광무황제에게 "을사조약이 성사되면 나라가 망할 것이 분명하니까 친일 매국노들을 처단하고 폐하도 스스로 죽어서 순사직(殉社稷)하시라"는 파격적인 상소를 올렸다.

무력을 앞세운 일제에 의하여 을사조약이 강행되자, 그는 고위 관직을 버리고 상소투쟁을 계속하며 자결미수했다. 그가 자결미수하는 것을 '김구' 선생이 목격하고 머리에 피를 철철 흘리며 실려 가더라 하고 "백범일지"에 기록하기도 했다.

그 후 이북 러시아 만주지방으로 가서 서전서숙을 창설했다. 1년 정도 교육 계몽활동에 종사하던 중에 고종 광무황제의 헤이그 특사 정사로 선임된다.

고종 황제는 이상설의 상소를 보고 눈물을 흘렸고 여비는 어찌하나 혼잣말로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이 부분이 "'이상설' 평전"에서 내가 가장 감동을 느꼈던 부분이다.

우리의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다. 결과론자다. 결과론자들은 위험한 현실에는 참여하지 않고 관망하면서, 현재 진행중인 중요한 사건을 지목하며 비관론을 말한다.

만약 그가 비관적으로 점친 사건이 좋은 결과가 되면, 나는 비관적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나도 내심 당연히 잘 되기를 바랬다고 말한다.

반면에 그가 점친 사건이 그의 말대로 나쁜 결과로 나타나면 입에 거품을 물 기세로 그러게 내가 뭐랬냐하고 자기의 현명함을 과시한다.

그리고 그들은 현실주의자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결과를 매우 중시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들은 무조건 옳게 된다.

그러나 결과론자들은 절대로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없고 자기의 인생을 현실에 순응하며 무가치하게 보내다가 그 구차한 삶을 마치는 운명이다. 그들은 그냥 비겁자일 뿐이다.

나는 밥먹다가 그런 사람이 떠오르면 밥맛이 떨어진다.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은 결과가 어찌되는 무조건 하고 살아야 된다. 그게 예술적인 삶이다.

고종 광무황제는 결과론자의 눈에는 망국 군주다. 광무황제는 헤이그 밀사 사건을 빌미로 퇴위를 당한다. 그리고 대한제국은 일제에 망했다. 결과론자들이 고종황제를 좋게 볼 리 없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고종황제는 역시 대원군의 아들다운 면이 있었다.

결과론자는 또 이렇게 주장할지도 모른다. 안중근의 폭력 테러는 결과적으로 큰 의미 없고, 한일합방이 앞당겨지는 빌미만 됐다고. 평범한 인간들은 결과론자의 비판이 두려우면 아무것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제국 어차피 망할 운명이었고 안중근의 복수는 우리 민족의 수치를 씻는 통쾌한 쾌거였다. 안중근의 쾌거와 순국 덕분에 후손들이 덜 쪽팔리는 것이다.

헤이그 특사 사건 역시 그와 비슷하다.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에서 국권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건이었다. 그런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후세의 우리가 그나마 덜 부끄러운 것이다.

고종 광무황제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젊은 특사 3인을 파견하여 일제의 야만적인 만행을 폭로하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였다.

그 결과는 제국주의 열강 해적들의 외면이었고, 그래도 특사들의 주장은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일은 일제의 입장에서는 경악할만한 일이었다.

그 헤이그 특사 파견의 의의로 을사늑약이 대한제국 황제의 의지에 반하는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빼앗긴 것은 되찾을 수 있고 갖다 바친 것은 되찾기 어렵다."

이상설, 이준, 이위종이 특사의 선수였다면 미국인 호머 헐버트는 큰 기여를 한 "제4의 특사"였다고 한다. 그리고 고종 황제 역시 그 사건의 주역으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고종 황제는 그 사건의 원흉으로 지목 받아서, 그 사건으로 인하여 일제와 친일파에게 탄핵당하여 강제 퇴위 된다. 이준 검사는 특사활동 끝자락에 순국하고, 남은 두 사람은 궐석재판의 사형수가 되어 해외 망명객이 된다.

을사조약 내용이 외교권을 박탈하고 대한제국을 식물국가로 만드는 내용이었으니, 헤이그 특사 사건은 외교활동이었으므로 일제와 친일파의 입장에서는 을사조야꾸 위반이었던 셈이다.

이준 선생이 순국한 후 이상설과 이위종은 계속 세계 각국을 순방하며 외교활동을 계속하였다.

그중에 특기할만한 내용은 미(합중)국의 태도였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내용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조약 당사국 중 어느 일방이 제3국으로부터 침략을 받게 될 경우 공동대처한다."

그래서 이상설은 그 조약 내용을 믿고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을 만나서 고종 황제의 친서를 전하고 도움을 요청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루즈벨트는 면담을 거부했다.

을사조약은 조미수호통상조약 내용중에 나오는 "제3국의 침략행위"에 해당되는데, 미국과 일본의 가쓰라-테프트 밀약 이후 미국은 일제의 편에 서서 조약의 의리를 저버린 것이다.

이렇듯 국가는 자주적인 역량으로 국제정세를 헤쳐나가야 하고 다른 나라의 힘에 의존하면 그 꼴을 당하고 망국을 당한다.

지금은 어떠한가? 미국에 군사주권 상납하고 대한은 미국의 무기 호구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미국이 없으면 "북한"에 망한다는 똥개 같은 논리를 펴며 미국에 메달리고 있는 꼴이다.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의리를 저버렸던 의리 없는 미국을 "혈맹"으로 추켜세우고 일제 침략의 주인공인 일본과 한미일 삼각동맹을 하고 있으니 대한민국은 똥개같은 나라가 되어 있는 것이다.

1953년 정전협정 내용에는 남북 쌍방의 외국군대와 무기 철수 내용이 있다. 미군은 수만명이 여전히 안 나가고 있고 미국산 무기를 계속 들이고 있다. 미국은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만약 대한민국이 미국땅이면 미국은 정전협정 위반이 아니다. 자기나라 속국에 자기들 군대와 무기를 들여놓는 건 이상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인민들은 미군을 축출하고 비동맹 독립 공화국을 세워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띠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외교활동을 끝낸 '이상설'은 러시아에서 13도 의군과 대한광복군정부를 만들고 정도령(正都領)에 취임했다. 13도 의군과 대한광복군정부의 성격은 임정(臨政)의 전신이고, 총기로 무장한 의병 정부였다.

그리고 그 정부의 수장으로 고종 광무황제를 세우려고 했다. 대한광복군정부 밀사가 고종황제를 만나는데까지 성공했고 고종은 그에따라 러시아로 망명하려고도 했지만 일제에 발각되었다.

만약 고종 황제가 러시아 망명에 성공해서 13도 의군이나 망명정부를 이끄는 역할을 했다면 자칭 "광무(光武)" 황제 이름 값을 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광무 황제라는 이름이 좀 멋적게 되었다.

이상설 선생의 마지막 투혼은 신한혁명단이었다. 혁명단원 '성낙형'이 고종(전 황제)을 당수로 추대하기 위해 만나러 갔다가, 서기 1915년 '보안법(현재 대한민국의 국가보안법)위반사건'에 걸려 검거되고 끝내 좌절되었다.

이상설 선생은 부유한 고위 관원이었는데, 젊은 나이에 얻은 고위 관직도 버리고 구국의 가시밭길에 들어서서 망명 생활 중 독립운동으로 가산을 탕진하여 말년에는 생활도 곤궁할 정도였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련하기 짝이 없는 삶이었지만, 나는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좋다. 대한민국에서 친일파 후손들이 모든 토지와 주택을 독점하고 있는데, 이 나라의 체질을 '사회주의 시민 공화국'으로 빨리 바꾸어 내야 한다.

"보재 이상설 평전"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들을 기록으로 남겨 보았다. 나는 '김삼웅' 선생이 쓴 [채륜] 출판사의 "보재 이상설 평전"을 읽었다.

가르침과 깨달음을 많이 준 아주 좋은 내용이었고, 한 가지 옥의 티는 138쪽에 약간의 오기가 있는 것이다. 이준 선생이 1895~1907로 된 것인데, 조사해보니 실은 이준 선생이 1859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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