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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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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흥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9년 현재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동 대학교의 박물관장 교무처장 문과대학장을 역임하였다. 한국 고대 사회경제사와 설화 및 문화사 연구에서 독창적인 성과를 내왔다. 문명사, 세계 고대사 전반에까지 관심을 확장하여,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과 연관되어 있으며 한국사회에서도 그 비중이 크게 증대하였으나 노쇠 징후를 보이고 있는 그리스도교 종교사의 핵심 주제인 ‘역사적 예수’를 연구한 바 있다. 지은 책으로는 『삼국 및 통일신라 세제의 연구』, 『새롭게 쓴 한국고대사』, 『천년의 왕국 신라』, 『고구려 건국사』, 『왕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는가』(공저), 『역사적 예수』 등이 있다.

이처럼 야훼 숭배는 관습적인 양상을 유지하다가 기원전 8세기 후반 아하스왕대에 와서는 전에 없던 국제적 위기가 고조되며 야훼 신에 대한 신뢰가 회의되기에 이른 것이다. 국제적으로 능력을 발하지 못하는 무력하고 무능한 야훼 신에 대해 왕을 위시한 많은 사람들이 신뢰를 거두었다. 현대의 개인도 실존적 대위기를 경험한 후 개종하거나 신앙을 그만 두는 경우가 있는데, 아하스왕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사람들이 어떤 신 관념을 계속 받아들일 것인가 여부는 그것이 과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 정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유용하기 때문이다. (「남유다 아하스왕(BC 733~727)의 무능한 신 야훼에 대한 회의와 불신」 중)

예언자들이 크게 의존했다고 여겨지는, 회개와 용서(회복)가 가미된 「신명기」적 논리, 율법의 타협적 응보관은 보수적 신학자나 설교자들의 호들갑과는 달리 사실 그리 어렵거나 놀라운 신학이 아니다. 응보주의는 제국과 종속국 간의 조약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세계 고대사회의 일반적 인식이었고, 자기 백성이 벌을 받고 회복되지 못한 채 영원히 소멸하는 것은 민족신 자신의 소멸로 귀결되는 일이었다. 따라서 민족신 스스로 자신을 보전하고 영광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기 백성을 반드시 살려 회복시켜야 했던 것이다. (「에스겔 환상 속 공중에 펼쳐진 야훼의 영광」 중)

인간의 역사는 지체되기도 하고 일시 되돌릴 수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결국은 변화를 수용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따라서 과학적 사유가 크게 확대되어온 근대와 현대를 거치며 그 신의 역사적 실재로서의 능력이나 위상에 대한 불신이 깊어진 만큼 다른 성격과 위상, 그리고 존재 방식을 모색해 나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신약시대 로마제국과 함께 온, 다소 기이한 삼위일체 신으로의 변모와 재탄생이 향후 도래할 신의 변화의 전례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표류 중인 그리스도교와 신의 장래」 중)

“이 주제는 참된 신의 존재 문제와도 연관된 것으로, 약 3천 년간 진실을 추구하던 많은 인간들, 특히 『성경』에 보이는 욥(Job)은 물론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상당수도 매우 궁금해 했으나 드러내 언급하기에 부담스러워하던, 근본적이며 너무나 큰 질문이었다. 한 고대 약소민족에 의해 지나치게 포장된 신의 절대적 위세 앞에 그에 대한 진실 탐구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신의 배타적 유일성이 그리스도교 내에서도 약화되는 상황에서 그 신이 어떠한 실재인지 역사적 연구를 통해 확인해 보려는 것은, 먼저 필자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과도 연관된 이 오랜 궁금증에 대해 역사학자로서, 역사적 진실 자체를 보다 분명히 밝혀보고 싶어서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힘을 지닌 종교이나 쇠락의 위기를 맞이한 기독교의 현주소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이 종교의 근간이 되는 살아 역사하는 불멸의 창조주로 주장되어왔으나 크게 회의되고 있는 야훼 신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는 일은 몹시도 중요하다. 그것을 종교인이 아닌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지식인이나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쉽게 납득할 수 있도록 역사적 사실과 상식에 근거해 탐구한 작업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의의가 있다. 인간 역사의 엄중함을 신뢰하며 진리를 위해서라면 불편한 역사적 진실조차 반긴다는 저자는, 유일신 야훼 신앙의 역사성과 그 현대적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성경과 기존 연구들을 보다 자유롭고 비판적이며 객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스라엘 고대사와 그 신의 역사에 대하여 기존 신학 기반의 저서들과는 크게 다른 저자의 설득력 높은 합리적이며 명쾌한 해석을 만나게 될 것이다.
저자는 기독교의 경전이자 고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담긴 구약성경이 ‘사실(史實)’ 그 자체보다는 ‘신앙심’을 기반으로 구성 기록 편집된 책이라 본다. 신비와 계시의 권위를 존중하는 종교의 특성상 신의 의지가 역사를 주도한다고 기독교 신학자나 신자들은 굳게 믿고 있지만,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역사를 구성하려면 그러한 신화적, 신앙적 태도는 넘어서야 할 장벽이다. 역사학자로서 저자는 전통적 신앙의 대상인 ‘계시의 신’과 그 반대편의 ‘만들어진 망상’이라는 두 극단적 관점을 넘어, 이스라엘 민족이 역사를 통해 찾아나간 ‘발견된 신’이라는 관점에서 야훼 신을 고찰하고 있다.
이 책은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꼼꼼히 훑으며, 야훼가 팔레스타인 남방에 있었던 일부 유목부족 민들과 함께 원이스라엘 사회에 유입되어 가나안의 기존 최고신인 엘 신과 함께하는 여러 신들 즉 엘로힘 중 하나였다가 민족신으로 정립되는 과정, 다윗과 솔로몬 왕국의 신으로서 왕정신학이 확립되는 과정, 왕국 분열과 제국의 침략으로 맞이한 주신(主神)으로서의 위기와 그 극복 과정, 바빌론 유수와 민족 해방이라는 역사 속에서 마침내 우주적 유일신으로 선포되는 과정을 상세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통찰에 이른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 고난의 여정을 온몸으로 겪어낸 것은 이스라엘 민족 구성원들이었다. 민족 형성, 국가 성립, 국가 멸망, 그리고 포로 해방의 단계마다 역사한다고 여긴 신을 찾아 그 개념을 발전시킨 이들도 그들이고 그들의 지성들이었다. 야훼 신이 그처럼 역동적으로 그려진 것은 약소민족의 존속과 발전, 그리고 승리를 향한 염원에서 나온 역사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과 그에 대한 성찰의 결과였다. … 약소민족으로서 자신들의 역량을 실존적으로 파악할수록 그들은 고난과 절망 속에도 이어지고 있는 민족의 역사가 어떤 존재(신)의 도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고, 그래서 그와 함께 가야 한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확신은 민족적 위기가 커질수록 증대되어 일개 민족신에서 국내적 유일신을 거쳐 끝내는 이방에서도 역사하는, 만민이 섬길 수 있는 우주적 창조주 유일신을 발견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유일신 야훼의 실체」 중)

치열하고 정밀한 탐구 끝에 결국 저자는 고대 이스라엘 역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밝혀낸다. 그것은 당대 기득권 정치 종교 엘리트들이 지은 『성경』에 묘사된, 다른 신을 용납하지 않고 질투가 심한 파토스(pathos)적 야훼 신이 아니라, 힘든 세월 역사적 실패의 책임을 묵묵히 감당해온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결국 야훼 신은, 약소민족인 이스라엘인들이 자신들의 존속과 승리를 위해 각 역사적 단계를 통해 발견하여 그래서 변모해갔던 관념적인 실재였던 것이다. 그 신은 제국들의 침략으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멸망이나 대 이산을 막아주는 전능하고 살아있는 신이 아니고, 약소민족이 소망한 신답게 오히려 백성들의 불신앙을 탓하며 장래의 가능성만을 변명으로 제시할 수밖에 없었던 관념적인 신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새 시대, 유일신의 변모를 요구하다
그렇다면 고대의 저 먼 나라 약소민족의 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울림이 있는가. 과학과 철학의 발달로 ‘신은 죽었다’는 선언이 나온 지 오래고, 흰 수염을 기른 남성의 모습으로 죄와 벌을 마음대로 내렸다 거두는 인격신을 믿고 의지하는 이들도 줄었다. 사회와 문화를 비롯해 모든 것이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변화하며, 그로 인해 사람들은 지쳐간다. 이러한 시대에 기독교는 어떻게 그들의 신을 알리고, 삶의 동반자로 소개할 것인가. 저자는 「보론」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에 의해 구약의 야훼 신앙이 신약의 예수로 새롭게 태어났다는 사실을 밝히며, 현재의 기독교가 앞으로 변화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의 일면을 시사하고 있다.

“자폐적인 면조차 있던 이스라엘의 민족신 야훼에서 발전해온, 대거 변화한 그리스도교의 신은 강압적 군주도, 대철학자도 아니고 이스라엘만의 구원자도 아닌, 세상 많은 약자들과 늘 함께 하는 영원한 친구였다. 그 신이 왕이나 주인이 아닌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어진 것은 셋이며 하나인 신 안에 ‘예수’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 인간 예수는 자신이 처한 절망 상태를 극복하고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 특히 자신처럼 절망에 빠져있던 사회적 약자인 민중들에게 삶의 희망과 비전을 열어주었다. 그는 왕이나 메시아, 종교 조직의 교주가 되지 않으려 했지만 추종자들이 그를 끝내 신으로 보고자 한 것은 그에게 남다른 감화력과 희망의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표류 중인 그리스도교와 신의 장래」 중)

저자는 구약의 야훼 신앙이 ‘예수’라는 ‘친구’로 새롭게 탈바꿈했다고 말한다. 근래 역사적 예수가 주목받는 것은 위기를 맞은 기독교에 의미 있는 모색이 되며, 예수처럼 세상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자기를 넘어서고 타인을 섬기면 기독교가 삶의 의미, 진리와 구원의 길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한 첨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신앙과 기복의 대상인 인격신보다 봉사, 정의, 평등, 자유, 진리와 더불어 기독교가 강조해온 약자에 대한 관심, 원수까지 품는 헌신적 사랑, 선한 연대와 같이 역사 속에서 인간이 발견해온 가치가 더욱 절실하다. 이러한 가치는 기독교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공통적 토대이기에 다른 종교나 철학에도 열린 태도가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전통적 유일신 신앙이 퇴색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 이래 변화를 겪어온 그 신이 이미 새 시대를 위해 변모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다. 그 신의 실체와 변화의 가능성을 직시하고, 그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사유하고 논의하는 일이야말로 새 시대가 그 신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절실히 요구하는 변모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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