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파시즘] "베니스 공화국, 그 악의 근원"(Lyndon LaRouche)

2 years ago
235

[자유를 빙자한 파시즘]
후원 계좌: KEB 하나은행 298-810284-72907 (신항식)

1171년 비잔틴 황제가 제국 내 불법을 자행하던 베니스 상인 1만 명을 체포하여 몸값을 요구했을 때, 베니스 도제(대통령)가 함대를 끌고 콘스탄티노플로 갔지만 실패, 귀환 도중 수없이 많은 병사가 병으로 죽었다. 대통령은 길거리에서 살해 당했다. 이 문제를 처리하고자 귀족과 상인이 모였다. 40명의 대표가 의회(Great Council)를 구성하고, 제비뽑기를 통해 도제를 뽑았다. 대통령은 의회가 구성한 6인 위원회(내각)를 통해 국정을 운영해야 했다. 본격적인 공화제가 시작되었다.

13세기, 노예, 도제, 무역 상인, 자영투자가, 금융투자가의 사회적 이동이 자유로웠다. 교역 안전을 위해 해외투자 파트너십(colleganza)도 만들었다. 가난하거나 보통 재력의 상인들도 상선을 타거나 투자토록 유도했다. 나라에 부가 쌓였다. 오로지 이익으로만 뭉친 공화국 체제는 부가 쌓이자, 경제, 정치, 여론, 문화 독점을 향해 치달았다. 1324년 공화국 체제는 독재 체제로 거듭났다.

15-16세기 유럽에서는 "베니스 공화국에서 정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타락한 공화국 독재였다. 수백 년의 떠돌이 무역과 더불어, 이익이 되지 않으면 사람 관계를 맺지 못하게 만드는("쓸데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보여주듯이) 이기적인 문화가 지배했다. 그나마 과거 도제와 의회가 구휼 재단과 병원을 운영하던 전통을 교회가 지켜주고 있었다. 아무도 사회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자크 아탈리가 말하길, 21세기 공화국은 호텔처럼 잠만 자고 나가는 떠돌이(이민, 외노자, 여행객) 국가가 될 것이라 했다. 국민 모두가 서로에게 매국노가 되는 모습을 베니스가 처음으로 선 보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공화국이 지속된 이유는 지중해 무역 떠돌이들이 끝없이 베니스의 문을 두들기며 공화국의 새로운 재원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화국이 지속될 최고의 유리한 환경에 있었음에도 베니스는 레판토 해전(1571) 이후 무너져 내렸다. 해양루트가 대서양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더 이상 떠돌이 장사도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7-18세기, 베니스 공화국은 타락한 자들의 성지였다. 신분 세탁, 사기, 횡령이 난무했다. 1797년 나폴레옹은 베니스를 접어 버렸다. 그 이후, 베니스는 말 그대로 호텔, 관광지 가 되었다. 전통을 지키며 살아 온 무라노섬의 유리 공예만이 아직도 세계를 향해 반짝이고 있을 뿐이다.

-Puga D. & Trefler D.(2012), ‘International Trade and Institutional Change: Medieval Venice's Response to Globalization’, NBER Working Paper No. 18288(PDF), USA: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Norwich, J. J.(1977). A History of Venice. UK: Penguin Books.
-Graham Lowry, ‘How The Venetian Virus Infected and Took Over England’, The Executive Intelligence Review, Apr. 15, 1994.
-‘Sack of Constantinople’, https://en.wikipedia.org/wiki/
-Bhasin, C. S. (2014). Prostitutes, Nuns, Actresses: Breaking the Convent Wall in Seventeenth-Century Venice. Theatre Journal, 66(1), 19–35.

Loading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