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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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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무위키
그는 괴벨스와 함께 청중을 압도하는 연설과 천부적인 선전능력을 발휘하여 동네 소수정당에 불과했던 나치당을 제1당으로 일으켜 세웠다. 정권을 장악한 후 총리직과 새로 얻은 대통령직을 합쳐 제3제국의 퓌러(Führer: 총통, 영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나치 독일의 총통이 된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군수산업과 중공업을 확충하며 독일을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의 반열에 오르게 했고, 군국주의적 정책을 강행했다. 이러한 정책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해있고 패배주의에 찌들었던 독일 국민 대부분의 열광을 받기에 충분했고 심지어 '히틀러=독일의 메시아'라는 나치 당국의 선전을 그대로 믿는 국민들도 나올 정도였다. 전쟁을 기피하는 연합국의 소극적인 반응에 힘입어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뮌헨 협정으로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 지역을 무혈로 독일에 병합하는 등 외교적으로도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끝냈으면 좋았을 것을 안일한 생각으로 폴란드를 침공했다가 생각 외로 강경한 태도를 보인 연합국의 선전포고를 받아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다.

폴란드 침공 직후 전쟁 초기 나치 독일은 영국, 프랑스의 소극적 참전 의사에 따른 이른바 가짜 전쟁(Phoney war)의 전개를 역이용하여 마지노 선을 우회하는 대대적인 프랑스 침공으로 군사적 우위를 점했다. 그리하여 단숨에 섬나라 영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럽 대륙을 정복하는 데 성공하나, 대전 중반부를 넘어서고부터는 독소전쟁의 전략적 실책에 짐덩이가 되어 버린 추축을 떠안은데다 일본의 도발로 전선이 확대되는 등 악재가 겹쳐 매우 열세해진다.[6]

그와 동시에 점령지에서도 유대인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점령지 주민 학살을 주도하고 각종 전쟁범죄를 방치, 조장함으로써 그는 민심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레지스탕스와 빨치산들이 돌아다니며 테러, 사보타주를 기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파시즘의 압제와 인권 탄압에 질려 내부적으로도 반나치 인사들이 암암리에 생겨났다. 유능한 과학기술자들은 연이어 연합국으로 망명하거나 투항했으며,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백작을 비롯한 군부 측근들까지 히틀러에 대한 암살과 쿠데타를 시도했다. 결국 전쟁 말기 그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레닌그라드 공방전의 실패와 노르망디 상륙 이후 반 년에 걸친 연합국의 공세에 독일은 판도를 완전히 잃고 몰락해 버렸다. 서부에 전력을 몰아 회심의 반격을 노린다는 계획도 실패하고 동부에서는 소련군이 빠르게 들어오고 있었다. 계속된 독일 본토 항공전으로 연합군 전략폭격기들이 히틀러가 애써 만들어놓은 산업단지들과 도시들을 전부 초토화시켜 버렸고 독일의 전쟁수행능력도 점점 악화되었다. 군대가 와해되기 시작하자 히틀러는 진격도 후퇴도 없이 그저 "결사항전을 하라."고 떼를 썼다. 지휘에서 전략과 전술이 실종되었고, 물자의 보급도 끊겼다. 이미 전선에는 소년병과 노병이 징집되어 최전방에 끌려가 싸운 지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히틀러는 죽기 1주일 전까지 편성도 제대로 안 된 부대를 데리고 나가서 싸우라고 명령했다.[7] 이윽고 1945년 4월 30일, 소련군이 베를린을 포위하자 총통 벙커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세계를 공포로 몰아 넣은 독재자의 최후는 허망했다.

패색이 짙어지기 전에는 독일인들에게 거의 신으로 숭배받는 수준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종전 후에는 유럽에서나 전세계적으로도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말하는 것조차 금기시되었다. 나치즘에 입각하여 전쟁 중 점령지의 민간인 학살을 명령하는 등 숱한 전쟁 범죄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또한 홀로코스트 같은 인종 학살을 주도했고 T-4 프로그램 같은 장애인 말살 정책을 펴기도 했다.

남미의 칠레, 아르헨티나는 친독 국가였다. 다만 이들은 부득이한 이유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치의 남미 도주 문서 참고. 중동, 아프리카나 인도 등지에서는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에 대해 긍정적이거나 최소한 중립적이다. 일부는 대놓고 아돌프 히틀러를 옹호하기도 한다. 이들은 영국, 프랑스 같은 서구 열강에게 시달린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 발트 3국, 아이슬란드, 스웨덴 등은 나치 독일의 후원자였다. 핀란드, 발트 3국은 소련에게 많이 시달려 부득이하게 나치와 손을 잡았었고, 아이슬란드는 덴마크 군주인 크리스티안 10세 때문에 화가 났던 아돌프 히틀러가 독립시켜줬기 때문이다. 단 발트 3국을 제외하면 이들 나라들은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더라도 아돌프 히틀러를 옹호하거나 긍정적으로 여기진 않는다.

2010년대 후반 들어 유럽의 이슬람 난민들이 유럽에서 범죄 등 많은 사회문제를 일으키자 히틀러를 본따서 인종청소를 다시 부활시키려는 극우파들이 유럽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즉, 유럽에서 극우가 되살아나는 증거인데, 그래도 하도 이미지가 시궁창인지라 자신들은 나치가 아니라고 하며 연성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더 많다. 마린 르펜 등이 그렇다.
3. 이름에 대하여[편집]
아돌프 히틀러가 누렸던 수많은 행운 중에서 맨 처음 행운은 히틀러가 태어나기 13년 전에 닥쳤다. 1876년 훗날 히틀러의 아버지가 되는 사내가 이름을 알로이스 시클그루버에서 알로이스 히틀러로 바꾼 것이다. 아버지한테 가장 고마운 점이[8] 시클그루버라는 상스럽고 촌스러운 성을 내다버린 것이었다는 아돌프의 술회는 빈말이 아닐 것이다. 확실히 '하일 시클그루버'는 민족 영웅을 경배하는 인사말로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으리라.
이언 커쇼 히틀러 1권 (p. 39)

히틀러의 아버지인 알로이스 히틀러(Alois Hitler)의 원래 성은 시클그루버(Schicklgruber)였으나 알로이스의 어머니이자 아돌프의 할머니인 마리아 아나 시클그루버(Maria Anna Schicklgruber)가 요한 게오르크 히들러(Johann Georg Hiedler)와 재혼하면서 알로이스의 성이 히들러로 바뀌었고, 1876년에 히들러에서 히틀러로 성을 다시 바꾸었다.

이 일은 모두 아돌프 히틀러가 태어나기 이전의 일이기 때문에 아돌프의 성이 시클그루버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아돌프의 정적들과 소련군과 연합군들이 아돌프를 놀릴 때 "아돌프 시클그루버"라고 불렀다. 일부 소련군은 "우리는~ 베를린에 처박혀 있는 광분한 시클그루버 아저씨를 곧 만나러 간다네~"라는 요상한 노래도 부르며 조롱했고 연합군들은 "니네 총통이란 사람 오스트리아 페인트공 출신으로 원래 성씨는 '시클그루버'랜다."라며 조롱했다. 당연히 게슈타포나 친위대에게 손에 닿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거나, 불구가 될 정도로 구타를 당하거나, 수용소에 끌려갔다. 아돌프 본인도 자신의 인생의 불명예로 생각할 정도였다.

히틀러라는 성은 히들러(Hiedler), 휘틀러(Hüttler)라는 성의 바리에이션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그 유래는 오스트로바이에른어로 천정천을 의미하는 Hiedl이나 독일어로 헛간을 의미하는 Hütte에서 왔을 것이라 보는 의견이 있지만 그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Hitler라는 성은 알로이스 시클그루버가 자신의 성을 바꾸면서 만든 성씨라 독일에서는 거의 히틀러의 가족들이나 쓰던 성이고, 바리에이션인 Hiedler, Hüttler도 독일어권에서는 그리 많이 쓰이는 성은 아니었다. 저 성으로 검색하면 뜨는 사람들이 모두 아돌프 히틀러의 가족일 정도...그렇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히틀러가 천하의 대악당으로 평가되면서 Hitler라고 하면 바로 아돌프 히틀러를 떠올리게 되어 독일어권에서는 더 이상 이 성을 쓰지 않게 되었다. 2차대전 이후에도 살아남은 히틀러의 가족들이나 Hitler 성씨를 지닌 이들은 Hiedler나 Hissler로 개명했다고 전해진다. 가끔 히틀러라는 이름을 스스로 붙이거나 자식에게 지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네오 나치일 가능성이 100%라고 봐도 될 정도다.

히틀러라는 성뿐만 아니라 아돌프라는 이름도 서양 사회에서는 거의 나쁜 이름을 넘어 금지어급으로 취급되고 있다. 아돌프는 독일에서 흔한 이름이었으나 이후 전화번호부를 보면 그 흔했던 이름들이 싹 사라진다. 새 아기한테 지어주지 않는 건 물론, 멀쩡히 그런 이름을 가졌던 사람들도 다 개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돌프라는 이름은 오스나브뤼크의 성 아돌푸스(축일은 2월 11일)와 같은 가톨릭 성인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름이기에 독일이 아닌 북유럽권에서는 현재에도 아돌프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많다. 그리고 루돌프, 랜돌프, 돌프, 세이도르프같은 비슷한 이름들도 전세계적으로 많이 쓰인다.

러시아에서는 '아돌프 기틀레르(Адо́льф Ги́тлер)'라고 표기한다. 역사적으로 러시아어에서 인명이나 지명의 h를 /g/ 발음의 г로 썼기 때문. 이 자음은 역사적으로 /h/ 발음에 가까웠고, 현재 우크라이나어에서는 이 발음이 여전히 ㅎ 발음이다. 물론 요즘의 인물이나 지명은 Х(kh)로 옮겨적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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