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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앞에
프롤로그_천하무도 구의
내편內篇 1 순자 이야기 -인간과 하늘 사이에 선을 긋다
1장 순자를 만나다
순자를 만나다 | 현실주의자 순자 | 저무는 전국시대 | 군주를 위하여 | 순자의 문제의식
2장 순자의 나라
북방 조나라의 유자 | 제2의 조국 제나라 | 남방 초나라로 가다
3장 인간과 하늘 사이에 선을 긋다
하늘의 운행에는 규칙이 있으니 | 종교적 하늘과 결별하다 | 오직 인도만 있을 뿐 | 실천과 노력이 인간이다 | 인간도 하늘이다
서양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있다면, 동양에는 순자가 있다!
맹자의 성선설을 부정하여 유가의 이단아 취급을 받는 순자. 그는 전국시대 말기라는 혼란한 세상을 살면서 다가올 통일천하의 철학을 준비했다.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이라고 비판받던 공자 사상을 생존의 유학이자 국가 철학으로 발전시켰다. 공자 사상을 바탕으로 철저히 현실주의적 시각을 통해 제자백가의 사상을 집대성한 것이다. 성악설을 주장하여 인간을 부정적으로만 본다는 오해도 받았지만, 하늘과 인간을 구분하여 인간의 가치를 역설했으며, 예禮를 바탕으로 위僞할 것을 역설하며 군자의 길을 모색했다. 또한 시詩, 서書, 예禮, 악樂, 춘추春秋라는 오경을 확립하여 유가가 통일천하의 철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흔히 공자를 잇는 사상가로 맹자를 말하지만, 철학적 맥락이나 학문적 성취를 볼 때 공자의 적자는 바로 순자이다.
이 책은 젊은 동양철학자 임건순이 순자와 그의 사상을 21세기 한국에 소개한다. 보령이라는 가상의 한국인 대학생을 설정하여, 21세기로 불러낸 순자를 인터뷰하는 형식이다. 크게 순자와 그의 사상을 살핀 [내편 1], [내편 2], [내편 3]과 순자, 맹자, 율곡의 사상을 대조?비교하는 [외편 1], 순자와 제자백가의 사상적 역학 관계를 들여다본 [외편 2]로 구성했다. 더불어 책 말미에 《순자》의 [권학勸學] 편과 [수신修身] 편을 암송하며 즐길 수 있도록 수록했다. 마지막에 있는 [순자의 명언 99]는 독자를 위한 저자의 선물이다.
쪽보다 푸른 동아시아 철학의 거인
[내편 1]에서는 순자의 삶을 그의 동선을 따라 공간적 배경을 통해 짚어본다. 그리고 순자 철학의 대명제인 ‘하늘과 인간의 구분(천인지분天人之分)’에 대해 살피고, 학문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한다. [내편 2]에서는 본격적으로 순자의 철학과 사상을 살핀다. 천인지분에 이어 성위지분性僞之分을 논하며, 그 유명한 성악설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또한 순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중요 덕목인 예와 분分을 분석하고, 그가 말하는 군자란 무엇인지를 알아본다. 더불어 선대의 예를 통해 당대 현실의 예를 만드는 존재인 후왕後王의 개념을 톺아본다. [내편 3]에서는 순자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다. 스승, 역사가, 시장주의자, 사회학자로서의 모습을 통해 순자 사상의 깊이를 맛볼 수 있다.
“푸른 물감은 쪽풀에서 나왔지만 쪽풀보다 파랗고, 얼음은 물로 이루어졌지만 물보다 더 차다.” 순자의 이 말은 곧 자신을 가리킨 말이 아니었을까. 공자의 사상을 계승했지만, 당대 현실에서 수세에 몰린 유학의 위상을 여러 제자백가의 사상을 집대성해 타개한 순자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책속으로 추가
보령_ 율곡은 현실의 인간을 기로 놓고 봅니다. 그리고 그는 기질지성으로 인간 본성으로 설명합니다. 이것부터 선생님과 유사하지요. 왕양명은 심즉리를 주희는 성즉리를 논했지만, 율곡은 심즉기, 성즉기 입장에 있었어요. 정말 선생님과 똑같아 보입니다.
순자_ 저도 심즉기, 성즉기 입장이랄 수 있지요. 이는 신유학자들의 명제이기는 하나, 제가 현실의 인간을 이야기하다 보니 기를 통해 인간에 접근한다는 점에서 그들과 같은 입장입니다. _576쪽.
순자_ 그렇습니다. 그(묵자)의 인간관이 저와 거의 똑같습니다. 인간은 하얀 종이, 백지처럼 그 안에 아무것도 안 써져 있기에 결핍된 존재입니다. 하지만 공부 열심히 해서 채워 넣으면 되지요. 여기까진 묵자나 저나 같습니다. 다만 그 백지에 무엇을 써 넣어야 할지 답이 달랐습니다. 묵자는 하느님의 뜻인 천지, 저는 예. _627쪽.
순자_ (전략) 제 천관념은 절대적으로 그(장자)의 영향을 받은 게 사실입니다. 장자에게 천天은 눈앞의 자연, 눈앞의 세계 그 자체입니다. 자연과 세계는 무한 변화합니다. 기가 흩어지고 모이면서 무한히 변화하는 게 자연입니다. 자연은 그 나름의 질서와 원리대로 움직이고 변화하지요. 이것이 장자의 천입니다. 자연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하늘에서 장자는 조금이라도 도덕적, 윤리적 의미를 찾아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은 말 그대로 스스로自 그러한然 것이니까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모습이 무엇이냐, 바로 변화이지요. 자연과 하늘은 스스로 변하는 존재입니다. _634쪽.
보령_ 《중용》도 그렇고 《대학》을 봐도 그렇고, 두 책을 보면 선생님 색채가 강해 보입니다. 선생님의 계승자들이 만든 책이 《예기》이고 《대학》과 《중용》은 《예기》의 일부분이니, 두 책에 선생님의 색채가 짙은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전 《예기》란 경전에 대해서 몰랐을 때에도 《대학》과 《중용》을 보면 선생님 생각이 많이 났어요. 특히 《대학》에서요. (중략)
순자_ 《중용》에도 저의 지분이 있지만 크진 않지요. 반면 《대학》은 사실상 저 순자의 책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_653쪽.
순자 대 맹자, 그리고 율곡
[외편 1]에서는 성선설과 성악설의 비교에서부터 동양철학계 두 대가의 사상을 근원부터 전개 과정에 이르기까지 순자의 입을 빌려 맹자의 사상을 비판한다. 그리고 공자 사상을 잇는 유가의 적통이 누구인지를 밝힌다.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맹자 주장의 모순을 들어, 인간의 본성이 악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순자는 결코 인간을 부정적인 존재로 보지 않았다. ‘악’하다는 말을 서구의 개념인 ‘인간 본성’을 잣대로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분석한 오류를 지적하며,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중시하여 인간을 긍정한 순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조선 시대 순자식 신유학의 대가인 율곡의 사상을 살핀다. 율곡의 사상이 어떻게 또 얼마나 순자의 사상과 흡사하고 닮았는지, 순자적 문제의식과 사상의 치밀함을 어떻게 이어받았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이를 통해 조선 유학의 실체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율곡의 학문적 세례를 받고 율곡의 사상을 계승한 서인과 노론이 지배한 조선, 그 조선은 절대 성리학의 나라가 아니다. 순자와 율곡, 닮은 점이 너무 많은 두 학자의 사상을 보노라면 조선이 실제 순자식 신유학이 지배한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왜 우리가 더 순자를 주목해야 하는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율곡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율곡과 순자 사이에 사상적 가교 역할을 했던 기대승의 사상도 언급한다. 한국철학사의 잊힌 천재 고봉 기대승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도 이 책의 특색이라 할 만하다. 단순히 중국 철학만이 아니라 조선 철학도 이야기하며 동아시아 철학이라는 큰 그림을 보여준다.
제자백가 철학을 집대성하다
[외편 2]에서는 순자의 사상에 영향을 준 제자백가를 묵자와 장자를 중심으로 알아본다. 순자 당대에 유가와 치열하게 경쟁한 묵가의 학문은 유가 학문의 지나친 도덕 이상주의와 운명주의, 숙명주의를 뼈아프게 공격한다. 이에 위기를 느낀 순자는 오히려 묵자 사상의 장점을 흡수하여 유학을 진화시킨다. 겸애兼愛로 유명한 묵자 사상의 핵심 글자인 ‘겸兼’을 차용한 순자 사상의 개념어들을 살펴보면서, 본의 아니게 유학의 발전에 기여한 묵자를 떠올리는 재미가 있다. 또한 장자의 천天을 통해 순자 사상의 핵심 개념인 천관념과, 순자가 차용한 장자의 개념인 허虛, 상常 등을 살펴본다. 그리고 위僞와 무위無爲, 정명론正命論 등을 통해 장자의 사상을 어떻게 수용하고 발전시켰는지 알아본다. 그 밖에 노자와 법가 등을 통해 제자백가의 철학을 집대성한 동아시아 철학의 거인 순자를 보여준다.
이 책에는 순자의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대학》과 《중용》에 대한 장을 별도로 두었다. 지금까지 잘 언급되지 않았지만 두 책에는 순자의 지분이 상당하다. 두 책에서 순자의 체취를 느끼는 동안 순자 철학의 고갱이와 두 책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부분과 부분, 즉 일상과 매사에 지극히 함이니, 그리 지극히 하면 성실할 수 있고, 성실하면 밖으로 나타나며, 밖으로 나타나면 더욱 분명히 드러날 것이고, 드러나면 밝게 빛날 것이다. 밝게 빛나면 모든 이를 고무시킬 수 있고, 고무시키면 변하게 할 수 있고, 변하면 세상을 크게 이루게 할 수 있으니, 천하에 성실한 자만이 이처럼 커다란 화육을 이룰 수 있느니라.”(《중용》 23장)
*
이 책은 앞서 말한 대로, 한국의 대학생이 순자를 인터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어려운 내용이 어려운 줄도 모르고 술술 읽히는 매력과 재미가 있다. 그리고 스승으로서의 면모를 강하게 풍긴 순자처럼, 저자가 책 말미에 수록한 부록인 [순자 암송본]과 [순자의 명언 99] 또한 이 책의 매력이다. 동양철학의 깊은 울림은 텍스트를 암송할 때 맛볼 수 있다는 저자의 바람을 담았다. 순자가 말했다.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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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荀子
전국시대 말기 조趙나라에서 서기전 298년경 태어난 위대한 사상가. 순자는 지정학적 위치가 좋지 않은 모국의 상황 때문에 생존의 유학을 모색한다. 공자와 마찬가지로 천하를 주유하며 유세했으나 그의 능력을 알아보는 군주를 만나지 못해 뜻을 펴지 못했다. 마침내 제齊나라에서 학자적 면모를 인정받아 직하학궁에 몸담게 된다. 그는 직하학궁에서 다른 학자들의 신망을 두루 사며 그곳에서 좨주를 세 번이나 역임했고 학문 연구와 강학에 매진했다. 그러나 제나라의 국력이 기울어 연구 지원이 축소된 탓에 초楚나라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서 난릉蘭陵이라는 지방의 장관이 되지만, 곧 자리에서 물러나 제자를 가르치고 저술을 하며 일생을 마친다. 흔히 공자 다음으로 유가의 맥을 잇는 인물로 맹자를 꼽는다. 그러나 공자 사상의 적자는 순자이다. 그는 자신의 사상의 기초이자 핵심인 천天관념, 너무나 유명한 예禮와 성악설, 그리고 실천적 핵심 개념인 위僞를 설파하며, 다가올 통일천하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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